▲지난해 8월 삼성 기사가 삭제된 <시사저널>(왼쪽))과 기자 파업 이후 지난 1월 8일 발행된 <시사저널>(오른쪽).시사저널
1월 8일, 처음으로 내 이름이 빠진 <시사저널>을 받아들었다. 입사 8년차,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책을 들고서도 한참을 그냥 서 있었다. 도저히 책장을 넘길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책에는 단 한 명의 기자 이름도 올라 있지 않았다. '발행인 겸 편집인 금창태'의 이름만 실려 있었다.
<시사저널> 899호는 금창태의, 금창태에 의한, 금창태를 위한 <시사저널>일 뿐이었다.
내 이름이 빠진 책, 넘길 용기가 없었다
이른바 '시사저널 삼성기사 삭제 파문'으로 알려진 시사저널 사태는 언론사 편집권의 귀속 문제에 대한 것이다. 편집국 기자와 팀장·취재총괄팀장·편집국장 모두의 판단을 거쳐 실었던 삼성 기사를 금창태 사장이 인쇄소에서 편집국 몰래 빼내 문제가 되었다.
기자들이 문제제기를 하자, 금 사장은 '편집권은 편집인의 것'이라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 그리고 항의하는 기자들에게 '징계 폭탄'을 내렸다.
그리고 <시사저널> 899호는 '편집권은 편집인의 것'이라는 금창태 사장의 신화를 온전히 실현시킨 책이었다. 1월 5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시사저널 기자들은 이 책의 제작에서 완전 제외되었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이 책의 제작 과정에서 금 사장은 실질적인 편집국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외고 섭외도 직접 하고 마감을 독려하는 등 일선에서 투혼을 불살랐다는 것이다.
<시사저널> 899호는 우리 언론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책이 될 것이다. '편집권은 편집인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편집인이 전권을 행사하며 제작된 책이기 때문이다. 편집권의 배타적 소유자인 금 사장과 대체 인력으로 고용된 비상근 편집위원, 그리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일부 유령기자(공식 임명 절차 없이 책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있다)들이 만든 이 책은, 경영진이 편집의 전권을 휘둘렀을 때의 패악을 드러내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다 빼놓고 커버스토리만 살펴보도록 하자. 899호의 커버스토리를 누가, 무엇에 대해, 어떻게 썼는지만 살피면 금 사장이 믿는 신화의 오류를 확인할 수 있다.
899호 커버스토리 '노무현, '2012년 혁명’을 꿈꾼다'는 6쪽 짜리 기사는 시사저널 비상근 편집위원이자 여론조사분석 전문가인 김행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구상에 대한 자신의 상상력을 담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가] 정몽준에게 줄섰던 정치인, 언론계 컴백
먼저 '누가 썼나'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 2002년 대선 이전까지 김행은 <중앙일보>에서 여론조사 팀장 및 조사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여기까지는 문제없다. 문제는 2002년 대선에서의 행보다. 당시 김행은 대선주자였던 정몽준 의원에게 줄을 섰다. '국민통합21'의 대변인을 맡으며 현실정치에 몸을 완전히 담근 것.
현실 정치에 몸담근 언론인, 특히 대선주자에 줄을 댄 언론인은 다시 언론계에 기웃거리지 않는 것이 우리 언론계의 불문율이다. 비록 모시던 주군이 대선에서 패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곡필아세'를 반성하고 '부역 언론인'으로서 어떻게든 그 바닥에서 호구지책을 마련해야지, 언론계를 기웃거려 물을 흐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언가의 법도다.
그런데 이 미풍양속을 저버리고 금 사장은 김행에게 손을 내밀었고 김행은 그 '썩은 동앗줄'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