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오마이뉴스 권우성
공교롭게도 올해 우리나라는 사형제를 놓고 '폐지국'과 '존치국'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정부가 만 9년 동안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97년 12월 30일 23명을 무더기로 처형한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민간인권운동단체인 국제앰네스티(Amnesty)는 10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 해당 국가를 사실상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사형이 유지되는 나라는 한국, 미국, 일본 등을 포함해 68개국. 이에 비해 폐지 국가는 122개국에 이릅니다. 올해 말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 한국도 내년엔 이 대열에 끼게 됩니다.
그런데 10년간의 무사고가 '도로 아미타불'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63명이 사형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 중입니다. 법무부 장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사형을 단행할 수 있습니다.
사형제 폐지 특별법이 통과될 지도 미지수입니다. 특별법은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 등 여야 의원 175명이 발의해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입니다. 앞서 15·16대 국회 때도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전례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제앰네스티는 지난해 10월 10일 '세계 사형 반대의 날' 행사를 서울에서 열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이 동북아에서 사형제를 폐지한 첫 번째 국가가 돼야 한다"면서 집중 캠페인을 펼친 바 있습니다.
종교계와 대부분의 시민사회 단체도 사형제 논란이 가열될 때마다 폐지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폐지론 "사형은 법의 이름 빌린 또하나의 살인"
사형제를 유지 할 것인가, 폐지할 것인가 갈림길에서 다시 한번 사형 찬반론의 근거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형수 출신인 유인태 의원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합니다. 유 의원은 '민청학련·인혁당 사건'의 당사자입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유 의원을 포함한 14명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을 확정지었습니다. 그 뒤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인 9일 새벽 인혁당 사건과 관련한 8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지난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을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발표했습니다. 2005년 12월 법원은 유가족들이 제출한 재심 청구를 3년 만에 받아들였습니다. 지난달엔 최종 심리를 마쳤습니다. 판결만이 남은 상태입니다.
폐지론자들이 종종 드는 예는 이렇습니다. '사형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쉽다', '오심에 의한 사법 살인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유 의원은 이밖에도 사형의 야만성, 비효율성, 악용과 오판 가능성 등 3가지 근거를 듭니다.
유 의원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조항을 들며 "사형은 법의 이름을 빌린 또 하나의 살인"이라고 말합니다.
사형과 범죄 예방 효과와의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1988·1996년 두 차례에 걸친 유엔의 연구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보고서는 "사형이 종신형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어떤 증명도 실패했다"고 결론짓고 있다고 합니다.
'오판 가능성'도 문제가 됩니다.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조사에 따르면, 한국 전체 법관 중 35%가 한번 이상의 오판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기에 오판의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