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흙물이 흘러내리는 청나일 폭포의 장면김성호
전형적인 에티오피아 얼굴을 한 나의 수호천사는 남매였다. 내가 다음날 여행할 곤다르 지역에서 왔다는 오빠는 외과의사이고, 여동생은 대학생이라고 했다. 이들 남매를 만남으로써 버스를 타고 오면서 걱정했던 청나일 폭포 구경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훨훨 날려보낼 수 있었다. 현지 지리를 잘 아는 남매는 일반 여행객들의 관광코스가 아닌 샛길로 나를 데려갔다.
매표소에서 왼쪽으로 들판을 건너 걸어가자 얼마 되지 않아 청나일강(Bule Nile River)이 나왔다. 중간에 만난 또다른 에티오피아 젊은 연인과 함께 우리 5명은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 다음 다시 걸어서 청나일 폭포에 도착했다. 관광객들이 가는 동쪽 코스로는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우리는 폭포 위쪽을 가로지르는 지름길로 오다보니 15분만에 다다를 수 있었다. 청나일강에는 하마와 악어가 살고 있기도 한 데 내가 건너는 곳에서는 볼 수 없어 아쉬웠다.
폭포에 다다르자 하얀 연기 같은 물보라가 솟아오르는 모양이 보이고, 폭포의 물소리 떨어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폭포가 떨어지는 낭떠러지에서 50m 거리에서도 물방울이 날려든다. 폭포 아래로 가자 세찬 물소리와 함께 날리는 물방울이 옷을 흠뻑 적실 정도로 날아와 붙는다. 파란 색깔의 강물이라는 청나일강의 이름과 달리 누런 흙탕물 같은 강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6월부터 시작된 우기여서 빗물이 강변의 흙을 쓸어 내리면서 흐르기 때문이란다.
여전히 세찬 물줄기를 내려 뿜는 청나일 폭포는 생각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아 실망감이 적지 않았다. 잠비아와 짐바브웨 국경사이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폭포라는 기대감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애초 폭포의 높이는 45m이고, 폭이 400m가 넘었다고 하나 지금은 폭이 1/3로 줄어들어 100m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폭포의 웅장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나마 우기여서 이 정도라도 폭포가 떨어지는 것이 다행이란다.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아예 한 두 개의 물줄기만이 졸졸 흐른다는 것이다.
폭포 상류에 여러 개의 수력발전소를 위한 댐을 건설하면서 타나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수량이 급속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남매들도 하나같이 "옛날에는 폭포가 대단했는데, 지금은 댐으로 인해 확 줄어들었다"고 아쉬워했다.
청나일 폭포는 '티스 이사트(물 연기)' 또는 '티스 아바이(연기나는 나일)'라고 불릴 정도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멋진 폭포중의 하나였다. 실제로 에티오피아 1비르 지폐에 그려진 옛날의 장면은 그 폭뿐만 아니라 주변의 열대우림숲도 그 웅장함을 대변해 주고 있다. 지폐에 도안으로 쓰일 정도로 웅장하고 자랑스럽던 청나일 폭포의 위용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처럼 수력발전소는 폭포의 위용뿐 아니라 주변의 작은 열대우림숲 마저 파괴해 버렸을 정도로 심각한 환경파괴와 생태계 훼손을 가져왔다. 인류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환경보존과 개발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청나일 폭포는 전 세계 여행객들에게 되던져주고 있었다.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 차원에서 세계적 자연유산인 청나일 폭포를 되살리기 위해 전력을 공급해주는 국제적 운동을 벌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을 벗어나면서도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나 똑같다. 국제적 폭포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린 청나일 폭포는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월드컵 축구에 열광하는 에티오피아 젊은이들
폭포를 구경한 뒤 남매와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으나 차가 떠나려면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단다. 근처 허름한 가게에 들어가 음료수를 마시며 앉아 있는 데 20대의 젊은 남자 대여섯 명이 들어왔다. 이들에게도 외국여행객은 신기한 대상이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코리아"라고 하자 "노우스 코리아(북한)냐, 사우스 코리아(남한)"냐고 묻는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자 바로 "찌썽 팍(박지성)"이라고 축구 얘기를 한다.
독일 월드컵이 막 시작되던 때여서 에티오피아도 축구 열기로 들떠 있던 때였다. 한 젊은이는 박지성 선수가 영국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소속이라는 것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또 다른 젊은이는 이영표 선수와 소속팀인 토튼햄까지 말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기도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축구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조금 더 아는 사람이 한껏 폼을 잡는 듯했다. 여행 내내 월드컵은 아프리카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었다. 그동안 말이 없이 조용해 지켜보던 앳된 얼굴의 다른 젊은이가 하는 말이 압권이다.
"월드컵 하는 데 축구구경 안하고, 왜 아프리카까지 여행을 왔느냐?"
"나도 모르겠다."
갑작스러우면서도 황당한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순간 망막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그렇듯 아프리카 젊은이들에게도 월드컵 이상 재미있는 구경은 없는 듯 했다. 그러니 월드컵 구경은 안하고 아시아에서 멀리 아프리카까지 여행하러온 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남매의 오빠도 "축구는 세계 언어"라며 에티오피아에서의 축구 열기를 전했다. 축구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버스가 출발한다고 해서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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