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옳은가, 김근태가 맞나

[김욱 칼럼] '지역당 회귀론'와 '제2 대연정론'

등록 2006.12.04 13:59수정 2006.12.0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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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월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근의 정치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월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근의 정치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잠시 눈을 감고 있다.연합뉴스 박창기

지난달 30일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신당추진에 대해 "나는 신당을 반대한다, 말이 신당이지 지역당을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통합신당을 지역당으로 비난하는 것은 제2의 대연정 발언"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노 대통령과 현 집권여당의 실세들은 2003년 취임 직후 정치적 에너지가 가장 넘치던 6개월간을 민주당 해체문제로 날밤을 새더니 이제 남은 국정과제를 마무리할 마지막 1년을 다시 열린우리당 해체문제로 날밤을 새게 생겼다. 도대체 무슨 이런 해괴한 정권이 다 있는가!?

@BRI@취임 직후도 임기 말도 당 해체로 골머리 앓는 대통령

하지만 싸움은 이미 시작됐고 시비는 가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석으로 말을 바꾸고 있는) 노 대통령의 의중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 "다시 지역당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이 '형이상학적 수사'를 번역하면 "대한민국은 현재 이미 지역당 시대가 아니다"는 말이다.

과연 '현재' 우리 실정은 어떤가?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에 내준 단 몇 석을 제외하고는 호남의 전 의석을 석권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호남에 단 한 석도 없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내준 단 몇 석을 제외하고는 영남의 전 의석을 석권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외계인이라도 있다면 진심으로 묻고 싶다. 대한민국은 "현재 지역당 시대인가 아닌가!?"

그런데 노 대통령은 왜 "현재 이미 지역당 시대가 아니다"고 우기고 있는 것일까? "현재 지역당 시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현재 이미 지역당 시대가 아니다"는 '상상된 현실'이 나타난 것이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그러기를 원했는지 모르지만 그럴 수 없었다. 즉 실패했다. 그리고 '공룡이 된 한나라당'이라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제 여기가 갈림길이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지역문제 해결의 징표라고 우기며 자신의 유일한 업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도저히 꿈을 깰 수가 없다. 꿈을 깨는 순간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은 역사 속에서 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일을 기약하고 싶은 열린우리당 대다수 의원들은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꿈을 깨고 싶은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5·31 지방선거 직전 염동연 전 사무총장에게 "염 총장은 꼭 민주당과 통합을 해야 하겠습니까. 국회의원 배지가 그렇게 좋습니까. 나는 민주당과의 통합에 절대 동의할 수도 없고, 동의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죽읍시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이 죽자며 '대통령 업적'에 집착하는 노 대통령과 혼자 죽으라며 '국회의원 배지'에 집착하는 염 전 총장, 누가 옳을까?

서로 '지역당' 아니라는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과연?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정계개편 구상에 대해 "화투 치다가 '끗발'이 안 난다고 화투판을 섞어 버리는 몰염치한 행태나 다름없다. 또 아파트 건설 지역에 '떴다방' 차려놓고 실컷 챙겨 먹은 뒤 튀어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고 열을 내며 반대한다.(자료사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정계개편 구상에 대해 "화투 치다가 '끗발'이 안 난다고 화투판을 섞어 버리는 몰염치한 행태나 다름없다. 또 아파트 건설 지역에 '떴다방' 차려놓고 실컷 챙겨 먹은 뒤 튀어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고 열을 내며 반대한다.(자료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여기서 노 대통령이 옳다고 누구보다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노빠'들이 아니다. 바로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정계개편 구상에 대해 "화투 치다가 '끗발'이 안 난다고 화투판을 섞어 버리는 몰염치한 행태나 다름없다. 또 아파트 건설 지역에 '떴다방' 차려놓고 실컷 챙겨 먹은 뒤 튀어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고 열을 내며 반대한다.

이렇게 정계개편문제에 관한 한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찰떡공조를 하고 있다. 어법까지 완전히 일치한다. 지난 달 4일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사저회동을 놓고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김 전 대통령은 … 지역주의를 부활시켜 한국정치를 20년 후퇴시켰다는 비난을 자초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발표했다. 지역주의의 '부활'을 염려한 한나라당 대변인에 따르면 현재 자신들의 한나라당은 이미 지역당이 아니라는 의미다.

현재 우리나라가 지역(패권)당 체제인지 아니면 이미 끝났다고 보는지 '말'이 중요한 게 아니다. 모두가 각자 알아서 가슴에 손을 얹고 판단하면 된다.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한나라당이 정계개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집권가능성이 흔들릴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계개편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한나라당과 찰떡공조를 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입장은 뭘까?

대답은 염 전 총장에게 이미 했다. "나랑 같이 죽읍시다"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 그게 노 대통령의 진심이다. 그렇게 해서 정권이 한나라당에 넘어가도 좋단 말인가? 그렇다. 자신의 '유일한 업적(?)'인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느니 차라리 정권이 한나라당에 넘어가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다. 아마 이렇게 한마디 더 추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미래를 도모하는 게 더 낫지 않는가?"

정권이 한나라당에 넘어가는 것도 개의치 않겠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이미 적나라하게 나온 바 있다. 지난 2005년 말 "내가 꼭 정권을 재창출해야 될 의무가 있습니까?"라는 발언에 이은 2006년 초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만찬에서의 "당은 지방선거 승리나 정권 재창출을 생각하지만, 나는 국가·민족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당은)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그뿐이라면 나도 이해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의 존재'에 대한 신념이 옳건 그르건 노력하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말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노 대통령은 "정치가 제대로 된다면 양대산맥이 계속 유지돼 가야 한다"고까지 나아간다. 여기서 '양대산맥'이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다. 사실 이 '양대산맥론'은 "현재 이미 지역당 시대가 아니다"는 노 대통령의 믿음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논리다.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우선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현재 우리나라는 "이미 지역당 시대가 아니다"는 데 완전한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 따라서 양측은 정계개편은 다시 지역주의로 '회귀'하는 것이므로 반대한다는데 찰떡공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양측은 공히 앞으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양대산맥'으로 정권을 주고 받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가 제대로" 굴러가는 모습이라는 데도 완전한 의견일치를 본 셈이다.

이런 노 대통령의 관점에서 본다면 선거법 개정을 위해 '정권을 한나라당에 통째로 내줄 수도 있다'는 대연정 제안에 경악한 이들이야말로 오히려 가슴 답답한 우중들일 것이다. 그리고 물론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정권이 넘어가는 것도 대수가 아닐 것이다.

'지역당 회귀'인가 '제2대연정'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당`발언에 대해,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제2의 대연정 발언과 다를바 없다"며 "모욕감 느낀다, 유감이다"라는 표현을 쓰며 직격탄을 날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당`발언에 대해,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제2의 대연정 발언과 다를바 없다"며 "모욕감 느낀다, 유감이다"라는 표현을 쓰며 직격탄을 날렸다.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마디로 지금 정계개편을 반대하는 노 대통령의 마음 속에서는 '전두환의 한나라당'이 '김대중의 민주당'보다 더 중요한 정치발전의 우당인 것이다. 이것이 지역주의와 싸웠다는 영남출신 노 대통령의 어쩔 수 없는 본모습이다.

신당을 추진하는 김근태 의장의 즉각적인 반박은 바로 이 지점에 닿아 있다. 김 의장은 "지역주의 타파가 유일한 과제는 아니며, 명확한 비전을 세워 평화와 번영의 물꼬를 트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재 타파해야 할 영남패권주의가 존재한다는 말이며 거기에 더해 평화개혁 세력의 결집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상 민주당 분당 때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지긋지긋하게 전개될 열린우리당의 진로와 관련된 이데올로기는 거의 다 선보인 셈이다. 중구난방으로 덧칠될 논쟁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의 '신당=지역당 회귀' 발언과 김 의장의 '신당반대=제2대연정' 발언이 내포한 대립의 본질은 '한나라당을 인정하자는 노 대통령 세력'과 '민주당을 인정하자는 김 의장 세력'의 충돌로 보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신당=지역당 회귀'라며 한나라당을 인정하자는 노 대통령이 맞는지 아니면 '신당반대=제2대연정'이라며 민주당을 인정하자는 김 의장의 반박이 맞는지, 또 다가올 선거에서 정계개편 이후에 탄생할 정당체제를 심판해야 하는지 아니면 현 정당체제 그대로 심판해야 하는지 유권자 각자의 판단만 남아 있다.

한마디 첨언하면 난 유권자로서 "현 정당체제 그대로" 심판을 내리고 싶다. 이는 노 대통령이 염원하고 있고, 한나라당도 대찬성이고, 민주당 일부도 원하는 일이며, 민주노동당도 그러길 바라는 일이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정치적 여론의 대세다. '오월동주'도 이쯤되면 가히 예술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다. '정치실험'의 실패에도 다시 자신들이 주체가 돼 살길을 모색하고 싶은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의 앞길이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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