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한 지 이틀 만인 지난 9일 하원의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만나 협조를 부탁했다.백악관 홈페이지
스웨덴의 9월 총선은 또다른 의미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 선거 결과 보수당·자유당·중도당·기민당의 우파연합이 48%의 지지율을 얻어 46%를 얻은 집권 좌파연합을 꺾었다.
우파연합의 승리 요인은 캠페인 전략에 있었다. 먼저 대중적으로 민감한 이슈였던 실업률을 문제삼았다. 두번째, 4년 전 총선에서 급진적 시장주의 정책을 제시했다가 참패했던 우파연합은 '복지 체제의 큰 틀을 허물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미세개혁'으로 전략을 수정해 '중도' 노선를 선거 캠페인의 핵심기조로 정했다.
세번째,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승패의 분수령은 사민당의 오만이었다. 국민들은 요란 페르손의 대통령 전용기 도입과 청년실업 문제를 심각하게 여겼지만, 사민당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별다른 실업 대책을 내놓지 않았던 사민당은 투표일 10일 전에서야 민심을 읽고 뒤늦게 대책을 세웠다.
그러나 민심은 오만과 나태를 용서하지 않았다. 스윙 보우터 계층인 사무전문직과 전통적 사민당 지지층이었던 일부 생산직 노동자까지 사민당에서 등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2%의 패배였다. 우파의 기적적인 승리, 그것은 대중의 생존적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했던 '깨어있는 정치'의 승리였다.
'좌파'도 '우파'도 한미FTA가 좋다?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 대한민국 정치이다.
보수언론에 의해 '좌파'로 규정된 청와대가 한미FTA에 사생결단 식으로 나섰다. 소위 '집권 좌파정당'인 열린우리당은 당론도 정하지 못했고, 당 정책위 의장은 "북핵해결을 위해 한미FTA를 조속히 체결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거대야당 한나라당도 "한미동맹의 영속화를 위해 한미FTA를 차질없이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미FTA는 과연 무엇인가. 양국 정부는 "한미FTA가 개방과 경쟁을 통해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모두가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이 FTA를 지렛대로 삼아 사실상의 경제통합을 추진하고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이식을 완수하겠다는 것'이 사안의 본질이다.
국제 통상협상은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해야 하는 원칙이 있고 협상은 상호적이라지만, 상대가 미국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투자 조항'에서 투자자가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정부제소권' 부분을 뺀 것과 같은 지혜가 필요한데, 중간선거 이후 보호주의적인 미국 민주당 주도의 의회가 쉽사리 한국을 위해 양보를 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지금까지만 해도 한미FTA는 큰 불공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이 잃을 것은 너무 많고 분명한 데에 반해 얻어낼 것은 너무 적고 불투명하다. 농축산·투자·의약품, 금융, 문화와 미디어·공공서비스·지적재산권 등 FTA 협상의 핵심 의제에서 우리는 온통 미국에 내어줄 것밖에 없다. 정부가 처음부터 4대 선결조건을 보장하는 바람에 심각한 불평등을 전제로 해서 협상 아닌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한미FTA가 이대로 체결된다면, 한국은 미국의 국익과 국제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경제체제로 귀결될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FTA는 그간 1997년 체제 아래에서 진행되어 온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산업 양극화와 대한민국의 국제투기금융지대화를 부추길 것이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협상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 협상팀과 국회 FTA특위를 이해당사자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둘째, 투자자 제소권과 통상협정의 우선권을 제거하고 국내법을 우선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셋째, 공공서비스와 국민의 건강권 등 공공성을 굳건히 지켜내야 한다. ▲넷째, 협상시한에 쫓기지 말고 불공정한 협상 자체를 보이콧하는 강공 카드를 내미는데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사상의 적이고 이념의 적으로 돌변하던 여야가 한미FTA에는 똑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기성정치, 여야 정당정치에는 이념과 노선도 자신이 대표하는 계층도 민본정책도 없다. 정책은 행정부에 있고 경제관료들에게 있으며 '미국의존 성장제일주의'라는 교리를 전파하는 보수언론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골리앗, 그것은 거대 여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방후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끌었던 '성장주의 보수적 관료집단'과 '미국의존 보수언론'까지 포함하는 '보수레짐'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