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를 잡는 통발에 떡밥을 넣습니다.이승숙
하지만 길 아래 집 논은 1년에 주인 그림자를 딱 두 번밖에 못 본다. 그 집은 벼 내고 나면 한 번도 논에 안 나와보다가, 가을 추수할 때나 얼굴을 내비친다. 그러니 그 집 논의 벼들은 꺼칠하고 윤기가 없는 게 꼭 주인의 사랑을 못 받는 개의 털처럼 부스스하다.
길 아래 집 논은 벼 반 피 반이다. 벼보다 키가 더 큰 피가 논에 가득 번져서 피 논인지 벼 논인지 구분이 잘 안 갈 정도로 논에는 피가 많다. 피가 벼 논에 있으면 벼가 잘 자라지 못해서 수확량이 떨어지므로 농사꾼이라면 피는 보이는 족족 다 뽑아버린다. 그러나 길 아래 논은 피 농사를 짓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논에 피가 많다.
길 아래 논이 이렇게 버려져 있다시피 하니 남편은 노상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거였다.
"저 벼 왜 아직 안 베는 거야? 서리 맞으면 쌀이 맛없다는데 왜 추수 안 하지?"
"피 저거 내가 좀 뽑아 줬으면 좋겠네. 벼에 갈 영양분이 피로 다 가서 수확량이 얼마 안 나겠네."
논 주인도 아니면서 농사 걱정을 혼자서 다 했다. 그런데 제초제도 안 뿌리고 비료도 안 치는, 거의 버려져 있다시피 하는 그 논 덕을 우리가 볼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