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어 벌어진 으름. 얼마나 맛이 있을까. 어느새 침이 넘어간다정길현
학교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네아이들을 멀리한 채 줄달음쳐 집으로 달려왔다. 아저씨는 환한 웃음을 지며 지게 위에 걸어 놓았던 으름이 매달린 덩굴을 한아름 안기어 주시곤 했었다. 가족이 없이 혼자서 우리 큰집 사랑채에 기거하시며 농사를 지어주시던 아저씨는 늘 나와 말동무를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저씨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나를 말동무로 끌어들이기 위해 언제나 먹을거리를 벽장에 숨겨놓으셨다가 하나씩 꺼내주며 늦은 밤까지 말동무를 찾으셨던 것 같다. 전국을 안가본 곳이 없다던 아저씨는 겨울밤 새끼를 꼬았고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워 주시며 각 지방의 옛날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시었고, 어린 나는 졸린 눈을 부비며 신기한 옛날이야기에 빠져 갔었다.
이른봄 산에 가시면 커다란 칡을 캐어다가 톱으로 잘라 알이 가장 잘 배어있는 조각을 남기어 놓았다 주셨고 봄에는 줄기에서 신맛과 단맛이 나는 싱아를 잔뜩 꺾어 지게에 매달아 콧노래 흥얼거리시며 개울을 건너오시던 아저씨 모습이 기억난다. 여름이면 머루와 오디를 따다 주셨고 초가을이면 내가 제일 맛있어 하던 으름을 따다가 주시며 맛있게 먹는 모습에 환한 웃음을 지으셨던 아저씨이다.
오늘 우연히 서울 도심속에서 으름을 보며 그 옛날 아저씨의 환한 미소를 떠올려 본다. 큰아버지께서 운명하시자 어느 날 내가 학교 간 사이에 아저씨는 "이제 어른이 안 계시니 다른 지방으로 가볼랍니다"라며 정처없이 떠나셨다고 한다. 아직도 살아계실까? 벌써 40년 전 일이데 추억 속의 아저씨 모습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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