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만들어진 것들의 가치

달내일기(63)-대나무갈쿠리로 쓰레기를 처리하다

등록 2006.09.21 15:01수정 2006.09.2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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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산산’이 지나간 뒤 며칠이 지났지만 그 뒤처리는 아직 다 못했다. 하루는 직장에서의 바쁜 일로, 하루는 모임이 있어서, 또 하루는 물건 사야 할 일로 시내를 들러 늦게 퇴근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바람과 물로 밀려온 쓰레기가 그냥 그대로 남았다.


둘러보니 심야보일러 교체로 하여 생긴 폐자재랑,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이랑, 낙엽송이 넘어져 부러진 가지들이 떠내려 온 것도 있었다. 다른 것도 다 치워야 하지만 낙엽송 가지들은 그냥 오래 내버려둘 수 없었다. 다시 비 오면 이제 그것들은 배수로를 막게 되니까.

집 뒤의 낙엽송들
집 뒤의 낙엽송들정판수
낙엽송은 예전에 우리 나라 산이 황폐화했을 때 녹화사업과 목재 재료로 쓸 두 가지 목적으로 일본(낙엽송의 학명은 ‘일본잎갈나무’)에서 들여온 것이다. 처음 낙엽송을 심고 난 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한다. 심자마자 쑥쑥 자라 금방이라도 온 산을 뒤덮고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줄 것 같았기에.

그러나 낙엽송은 일명 전봇대 나무라 할 정도로 키가 큰 대신 매우 약하다. 뿐만 아니라 나뭇결은 곧지만 마르면 뒤틀림이 심하고 또한 강도가 약해 목재로도 쓸 수 없다. 그래선지 우리 뒷산에 있는 것들은 모두 키는 멀대 같이 컸지만 한결같이 여위었다. 그러다보니 센 바람에 견디지 못해 쓰러진다.

이번 ‘산산’보다 더 센 태풍이나 폭우가 온다면 아래로 쓸려 내려오다 우리 집을 덮칠 수 있기 때문에 올라가보았다. 역시 우려했던 대로 몇 그루가 쓰러진 채 다른 나무에 걸려 있었는데, 버티고 있는 그 나무들이 워낙 약해 치우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큰 둥치는 엔진톱으로 잘라서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훌륭한 땔감이 된다. 그런데 잎사귀(잎사귀래야 침엽수이므로 솔잎처럼 가는 침 형상의 잎)가 문제였다. 그것도 말려놓으면 불쏘시개 정도로는 쓸 수 있으나 우선 당장 비에 쓸려 내려오면 배수구를 막기에 쓸어 모아 치우려 했다.


왼쪽은 갈퀴 대신 사용한 쇠스랑, 가운데는 요즘 가장 흔한 철갈쿠리, 오른쪽이 대나무갈쿠리
왼쪽은 갈퀴 대신 사용한 쇠스랑, 가운데는 요즘 가장 흔한 철갈쿠리, 오른쪽이 대나무갈쿠리정판수

쓸어 모으려면 갈쿠리(‘갈퀴’의 사투리)가 필요해 창고에 가서 쇠갈퀴(사실은 쇠스랑)를 가져왔다. 그런데 전에 평지에서 할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산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사용했더니 영 불편했다. 움푹 패인 곳에 쌓인 낙엽송잎을 제대로 쓸어 담을 수 없는 거였다. 쇠 자체가 휘어지지 않으니까 생긴 현상이었다.

순간 그저께 집 옆 묘소에 마을 어른이 벌초하고 난 뒤 놓고 간 대나무갈쿠리가 떠올랐다. ‘에이, 쓰다가 대나무가 부러지면…’하는 생각과 ‘그래도 일부러 철 대신 대나무를 사용한 걸 보면…’ 하는 생각에 약간 갈등을 일으키다가 그걸 가져다 썼다.


아, 그런데 잘 긁어질 뿐만 아니라 패인 곳, 패이지 않은 곳에 있는 잎사귀까지 깡그리 다 쓸리는 게 아닌가. 대나무는 탄력이 있어 패이지 않은 곳에는 뒤로 젖혀지는 대신 패인 곳에는 앞으로 쭉 뻗어 다 긁어낸다.

그리고 예상보다 힘이 없지도 않았다. 생각에는 힘을 줘 당기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는데, 살짝 변형을 이루었다가 이내 제 모습을 찾는다. 그 신기함(?)에 반하여 그걸로만 일을 계속해 끝마쳤다.

왼쪽 두 개는 이사왔을 때 구입한 플라스틱빗자루, 오른쪽 두 개는 마을어른들에게서 얻은 대나무빗자루
왼쪽 두 개는 이사왔을 때 구입한 플라스틱빗자루, 오른쪽 두 개는 마을어른들에게서 얻은 대나무빗자루정판수

시골에 살면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걸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쇠나 플라스틱보다 대나무가 훨씬 강하고 유용하다는 걸. 앞에 예로 든 갈쿠리뿐만이 아니다. 빗자루도 마찬가지다. 요즘 집집마다 공공시설마다 플라스틱 빗자루를 사용한다. 자질구레한 걸 쓰는 빗자루부터 제법 많은 양을 쓸 빗자루까지.

그런데 대빗자루(혹은 싸리비)와 플라스틱빗자루는 다르다. 눈으로 보기엔 플라스틱빗자루가 잘 쓸릴 것 같은데 직접 쓸어보면 차이가 난다. 대빗자루가 훨씬 깨끗하게 쓸린다. 역시 갈쿠리처럼 변형이 자유로우면서도 단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들어간 곳 나온 곳에 적절히 반응하니 찌꺼기가 거의 남지 않고 깨끗하다.

가끔씩 이웃집을 들를 때마다 나무로 된 쌀독을 보고, ‘요새 돈 얼마 안 들이면 잘 만들어진 쌀독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 하며 솔직히 혀를 찼던 적이 있었다. 나무로 된 쌀독에 든 쌀은 살아 있지만 플라스틱쌀독에 든 쌀은 죽은 쌀이라는 걸 모르고서 말이다.

또 하나의 발견으로 하여 눈을 새롭게 뜬 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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