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슬픔에게 주는 휴가, 여행

전윤호의 <나에게 주는 여행 선물>

등록 2006.09.13 11:47수정 2006.09.1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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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하우스중앙
이유 없이 자신의 삶이 순간순간 싫어지는 때가 있는가? 자기도 모르게 멍하니 초점 잃은 눈으로 뭔가를 바라보는 경우가 있는가? 조금 전까지 자신이 하던 일을 왜 하는지 몰라 한참 머뭇거린 적이 있는가? 자주 지쳐있거나 슬퍼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좀더 진지하게 자신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당신의 심신이 무척 지쳐있기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해법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리라. 전윤호의 <나에게 주는 여행 선물>(이하 <나에게~>로 약칭함)이 당신을 위안해 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자주 보고 살았던 탓인지 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수영을 잘 해서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영은 잘 못한다. 무섭다. 어린 시절 몇 번이나 죽을 뻔했던 아찔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넓고 푸른 물을 바라보노라면 켜켜이 묵은 마음의 응어리라 할지라도 어느새 녹아내려서 좋다.

이것이 내가 매년 훌쩍 바다를 찾아 곧잘 떠나곤 하는 이유다. 고향을 떠나온 지 어언 20년이 넘는데도 말이다. 이에 전윤호의 <나에게~>는 나에게 향수에 젖게 한다. 앞표지 그림인 울릉도의 푸른 바다와 울릉도의 괭이 갈매기가 내속에 있는 추억을 끌어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여행지 선별기준이 나의 마음에 쏙 들었다. 무척 독특한 느낌을 주었기에 마음이 끌렸다고 하는 편이 더 솔직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 위주로 골랐다는 말이 그것이다. 극히 저자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선택한 장소였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곳은 어쩌면 이미 여행자에게 새로운 느낌은 더 이상 줄 수 없을 테니까.

<나에게~>는 모두 17곳의 여행지를 특징별로 담아내고 있다. 장소만 대면 그곳의 풍광이 금방 떠오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맛깔스럽게 소개해 놓았다는 데 공감할 것이리라. 특히 자신이 가본 곳이라면 저자가 느낀 인상과 비교하는 것도 그만이다. ‘아아, 맞아 맞아.’하면서 맞장구를 치기도 할 것이다.

시인이 지은 에세이어서인지는 몰라도 표현이 진부하지 않다. 케케묵은 언어를 가급적 자제하려 한 노력이 묻어 있다. 대개의 여행자가 놓치고 지나칠만한 세세한 면도 찾아내 독자를 신나게 한다. 꼭 그곳에 가보고 싶도록 한다. 이미 가본 곳이라면 한 번 더 가서 그곳에서 작가의 말을 되새겨보고 싶은 충동도 이끌어낸다. 실제로 나는 <나에게~>를 읽은 뒤 오이도로가는 길목인‘궁평리’라는 곳에 가서 몸소 느껴보았다. 결코 싫지 않은 체험으로 남아 있다.


군데군데 삽입한 여러 편의 시 대목도 독특한 맛을 낸다. 자세한 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해당 풍경을 요약해준다. 어떤 대목은 여운을 느끼게도 한다. 갑자기 독자에게 정지신호를 보낸다. 다음페이지로 넘어가지 말고 좀더 기다려 음미하게 한다. 신묘한 미가 아닐 수 없다. 산문을 읽으면서 운문을 읽는 묘미까지도 얻는다고나 할까.

여백이 많아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단락간의 띄움과 삽화 사진의 삽입 등은 진정 여행자에게서 찾을 수 있는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빈공간이 없을 정도로 채워진 답답함이 없다. 오히려 평화로움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장마다 해당 장소를 기술하기 전에 배치한 사진은 압권이다.


작가가 소개한 장소는 서울을 비롯해 인천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경기도 충천도 등이다. 울릉도에서 시작해 신두리 사구에서 마친다. 동해에서 시작해 서해에서 마무리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이치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특히 울릉도는 나도 여행지로서 소개한 적이 있다. 반면 나보다 훨씬 더 자세히 기술하고 있음도 인정한다.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부분의 섬세함까지도 챙기고 있어 부럽다.

‘울릉도에는 고기가 많지 않다’는 대목이 하나의 예이다. 나도 울릉도 기사를 쓸 당시에는 참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생각만큼 울릉도에서 큼직한 생선 따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작가의 해박한 설명이 의문을 말끔히 지워준다. 울릉도 어민 대부분은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한다는 말에 나는 어느새 새로움을 깨달은 듯이 숙연해지고 만다.

한편 <나에게~>에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내 고향이어서가 아니라 부산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부산이 유명한 곳이어서 뺀 것이라고 생각하니 우쭐하지만 왠지 한쪽 마음은 섭섭하다. 제주도도 같은 이유로 뺏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첫 장에 밝힌 바 있는, 저자의 주관대로 선정한 장소임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부산에도 제주도에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곳이 분명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해당 장소의 행정구역과 소재지를 정확히 기재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도 있었다. 물론 달리 알아보면 알 수야 있겠지만 책 자체로서 완전한 여행정보지의 역할을 다하려면 말이다. 지나친 홍보성을 배제하려는 작가의 소박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독자로서는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는 부분도 사실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베풀 수 있는 기본적인 써비스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곳을 여행해도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만 배우는 것 같다. 이는 거의 모든 면에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도 여행지는 여행자에게 여행지를 위해 준비했던 만큼만 가져가게 하는 것 같다. 여행자가 소홀했던 것만큼 더 깊은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 모양이다. 앞으로의 멋진 여행을 위해서라도 충분한 사전 지식을 확보해야겠다. 여러분도 여행 직전 해당 여행지에 관련한 사전 지식은 반드시 습득하기 바란다.

이쯤 <너에게~>를 읽고 가슴에 남는 진실 한 마디를 떠올려본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풍경도 제 본모습을 보여주지 아니 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여행에 관한 인상 깊은 한 구절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여행지에 관련해 미리 공부하고 떠나면 그곳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이들이여, 이제 당신이 당신자신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어보라. 생활에 상처받아 슬퍼하는 이들이여, 이제 당신이 당신의 슬픔에게 휴가를 주어보라. 전윤호의 <너에게~>를 한 번 쯤 읽고 가방 속에 넣어서 어디론가 떠나보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전윤호, <나에게 주는 여행 선물>, 랜덤하우스중앙, 2006. 7.21. 값9천5백원.
'리더스가이드'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전윤호, <나에게 주는 여행 선물>, 랜덤하우스중앙, 2006. 7.21. 값9천5백원.
'리더스가이드'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나에게 주는 여행 선물 - 전윤호의 마음을 달래는 여행 에세이

전윤호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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