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육신을 조국이 필요하다면 제단에 바치겠다"

[백범 탄신 130돌 기념 - 하] 백범 어록 편

등록 2006.08.29 17:59수정 2006.08.3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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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전(1910년) 8월 29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날입니다. 또 이날은 나라를 빼앗긴 일제 치하에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끄신 백범 선생의 130돌 탄생일입니다.

나는 이 아침 경건한 마음으로 백범 선생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당신은 가셨지만 발자취와 말씀은 그대로 남아서 우리 겨레의 향도(嚮導) 등으로 비춰주고 있습니다.

내 혼자서 듣기에 아까워 백범의 말씀을 가려 뽑아 조금 가다듬어 나라와 겨레의 희망인 젊은이에게 들려드립니다.

우리의 살길은 자주독립의 한 길 뿐이다

▲ 백범이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하다는 범부까지도 모두 적어도 나만 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내 원을 표하는 것이니…. (<백범일지> 중에서)

백범 김구 선생
백범 김구 선생백범 기념관
▲ 친애하는 자매 형제여, 우리의 살길은 자주독립의 한 길 뿐이다. 이 길이 아무리 험악하다 하여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 가지는 못하는 길이다. 주저하지도 말고 유혹받지도 말고 앞만 향하여 매진하자.

내가 비록 불초할지라도 이 길을 개척하고 나가는 데는 앞에서 나갈 각오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 부월(斧鉞)이 당전(當前)할지라도(도끼가 날아오더라도) 도피하지는 아니하겠다. (1948년 3·1절 기념사)


▲ 세계 인류가 네요, 내요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이요, 이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멀고 먼 장래에 바랄 것이요, 현실의 일은 아니다.

사해동포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할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일이니,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나의 소원> '민족국가' 중에서)


▲ 외국의 간섭이 없고 분열 없는 자주독립을 쟁취하는 것은 민족의 지상명령이니, 이 지상명령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망명생활을 삼십여 년이나 한 것도 가장 비현실적인 길인 줄 알면서도 민족의 지상명령이므로, 그 길을 택한 것입니다. (1948. 3. 21. <신민일보> 사장과 회견기 중에서)


다만 하나의 조국이 있을 뿐

▲ 통일이 없이는 독립이 있을 수 없고, 독립이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다.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면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민족단결뿐이다. 그러나 현시에 우리 조국이 미·소 양국의 분단점령을 당하고 있는 이상 국제협조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제협조에 노력하였고 앞으로 이 노력을 계속할 결심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경험에서 얻은 교훈에 의하여 국제협조의 노력도 공고한 민족단결이 있은 뒤에야 주효할 수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인식하였다. (통일 독립기구 강화. 1948. 6. 7.)

백범 선생 장의행렬이 소공동 한국은행 앞을 지나고 있다. 이 사진은 미 육군정보팀이 촬영한 것이다. (1949. 7. 5.)
백범 선생 장의행렬이 소공동 한국은행 앞을 지나고 있다. 이 사진은 미 육군정보팀이 촬영한 것이다. (1949. 7. 5.)NARA
▲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70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나의 소원〉 '민족국가' 중에서)

▲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의 소원〉중에서)

▲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절제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 하는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을뿐더러, 우리 민족의 정신력을 자유로 발휘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나의 소원〉중에서)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옛 청사.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옛 청사.박도
▲ 회고컨대, 나는 작년 4월 19일에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만난을 무릅쓰고 38선을 넘어서 북행했다. … 삼천만 동포의 마음속에는 다만 하나의 조국이 있을 뿐으로, 남북동포의 통일을 갈망하는 열렬한 의욕은 시간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제일차 협상을 실패라고 규정짓는 것은 조급한 생각이다. 국제적 압력으로 첨예하게 대립된 상극의 세력을 정치적으로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시킴에 필요한 오랜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선생님 말씀' 중에서)


38선 때문에

▲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의 기아(飢餓)가 있고 가정의 이산(離散)이 있고 동족의 상잔(相殘)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선생님 말씀' 중에서)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안치된 백범 흉상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안치된 백범 흉상박도
▲ 내 칠십 평생을 두고 본 바에 의하면, 어느 국가고 사회고 또 개인이고 간에 그 청년시기의 생장가치 여부가 결정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에 있어서 청년이 중견으로서의 힘을 상실하고 방황한다면 그 국가는 쇠망한다는 것을 여러분도 역사와 신문을 통하여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청년시기에 있어서도 청년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추진력을 가지기에 힘썼는데 어느 정도로 싸웠는지는 나 역시 알 수 없으나, 상해에서부터 지금까지 독립운동 선상에 있어서만은 청년과 접촉하였고 이 청년들을 애지중지하여 왔다…. 저 노골일 김구가 우리 청년들을 토대로, 지표로 신임하고 지금껏 싸워 왔구나 하는 생각 아래, 나를 집장(執杖) 삼아 각기 건국의 영웅이 되어 주기 바란다. ('선생님 말씀' 중에서)

▲ 한국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국제적 원조가 있을지라도 필경(마침내) 한국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삼천만이 갈망하는 것은 외국의 간섭이 없이 동족의 유혈이 없이 오직 평화로운 민주방법에 의하여 조국의 통일독립을 완수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통일을 위한 남북협상 희망. 1949. 1. 16.)

▲ 마음속에 삼팔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에 삼팔선도 철폐될 수 있다. 내가 불초하나 일생을 독립운동에 희생하였다. 나의 연령이 이제 칠십 유삼인바 나에게 남은 것은 금일 금일 하는 여생이 있을 뿐이다. 이제 새삼스럽게 재화를 탐내며 명예를 탐낼 것이랴! 더구나 외국 군정 하에 있는 정권을 탐낼 것이랴!

내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지(주로 관리)하는 것도, 한독당을 주지하는 것도, 일체가 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국가민족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신이나 일당의 이익에 구애되지 아니할 것이요. 오직 전 민족의 단결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삼천만동포와 공동 분투할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누가 나를 모욕하였다 하여 염두에 두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이번에 '마하트마 간디'에게서도 배운 바가 있다. 그는 자기를 저격한 흉한을 용서할 것을 운명하는 그 순간에 있어서도 잊지 아니하고 손을 자기 이마에 대었다 한다. 내가 사형언도를 당해 본 일도 있고 저격을 당해 본 일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나의 원수를 용서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부끄러워한다.

현시에 있어서 나의 유일한 염원은 삼천만동포와 손목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된 조국의 건설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需要, 필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泣告, 울면서 아룀)함 [대한민국 30(1948)년 2월 10일])


효창원에 모신 백범 묘소
효창원에 모신 백범 묘소박도

덧붙이는 글 | - 백범 묘쇼 참배 및 백범기념관 관람 안내 -
누구나 참배와 관람이 가능합니다. 특히 어린 자녀와 함께 가십시오. 백범 선생이 반겨주실 겁니다.

*관람시간: 10:00~17:00
*문의 및 예약 : 02-719-1311 또는 WWW.kimkoo.or.kr
*교통편: 6호선 효창공원역 1번 출구로 나오셔서 효창공원 방향으로 가십시오.

덧붙이는 글 - 백범 묘쇼 참배 및 백범기념관 관람 안내 -
누구나 참배와 관람이 가능합니다. 특히 어린 자녀와 함께 가십시오. 백범 선생이 반겨주실 겁니다.

*관람시간: 10:00~17:00
*문의 및 예약 : 02-719-1311 또는 WWW.kimkoo.or.kr
*교통편: 6호선 효창공원역 1번 출구로 나오셔서 효창공원 방향으로 가십시오.
#임시정부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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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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