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사방 너른 들판에 우뚝 솟아 신령스럽기까지 하다김정봉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영암, 강진, 해남을 갔다 오겠노라고 하면 '거기에 볼 게 뭐가 있느냐'는 무안한 대답을 듣기 일쑤다.
이런 물음에 속 시원히 대답할 말을 찾기가 어려워 '뭐 그냥 좋아서'라든지, 상대방이 성의 있게 듣는 시늉을 하면 두서없이 설명을 하곤 한다. 거기엔 예쁜 절 집 무위사와 도갑사가 있고, 다산의 자취가 남아 있는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있으며 추사와 인연이 있는 대둔사가 있다고 말할 때쯤 상대방은 벌써 싫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렇다. 거기에는 듣는 이가 혹할 만한 수려한 풍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들어서 금방 알아채는 대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배객들과 인연을 맺은 곳을 들러 그들의 체취를 느껴 보고 아기자기한 산세에 예쁘게 들어서 있는 절 집을 구경하고 메마른 누런 흙이 아닌 촉촉한 황토흙을 걸어보는 것으로 족한 소박한 곳이다. 여기에 남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있다.
'월출산무위사' 현판 내건 천왕문이 나를 반기다
너른 평야를 내달리다 마지막으로 용트림하듯 불끈 솟아오른 산이 월출산이다. 여느 산과 달리 산 뿌리를 드러내 더욱 힘이 느껴진다. 누가 보아도 예사스러운 산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산에 명찰(名刹)이 없을 리 없다. 월출산 동남쪽 산자락에 예쁜 무위사가 자리하고 있고 그 서쪽 편에 호젓한 도갑사가 앉아 있다.
사치스럽고 복잡하고 화려한 절하고는 정반대의 절 집 무위사. 무더운 한여름에 찾아가기엔 어쩐지 분위기가 맞지 않는 듯하다. 비가 촉촉이 내리든가,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그런 날이었으면 더욱 좋았을걸. 일에 쫓기어 오고 싶은 계절에 오지 못하고, 오고 싶은 때에 오지 못하는 신세가 딱하지만 이럴 때라도 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처음 반기는 것은 '월출산무위사' 현판을 내건 천왕문이다. 지은 지 얼마 안 되었으면서도 화려하지 않아 아주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고 아담하여 위압적이지 않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절 마당까지 소박한 길이 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