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7월 24일 오후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FTA 즉각 중단과 김현종 통상본부장, 김종훈 수석대표 등 책임자 해임을 요구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노무현 대통령과 김현종 본부장은 역시 별다른 근거 없이 '한미FTA=양극화 해소'라는 등식을 주장한다. 김현종 본부장은 이 문제도 '미국의 선진시스템'을 따라 자동으로 해결된다고 믿고 싶을지 모르지만, 미국사회는 심각한 양극화 문제를 지닌 세계적 복지 후진국이다.
이것은 미국정부가 특별히 사악해서가 아니라, 기업들의 이익 극대화 노력이 공공부문을 잠식하는 상황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미국대학에서 박봉의 강사료를 받아 매달 50만 원 이상을 보험료로 내야만 하는 필자나, 비싼 약값 때문에 캐나다로 '약 구매 단체관광'을 떠나야 하는 미국인들의 고통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기업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하는 한미FTA는 필연적으로 공공성 서비스와 복지를 약화시켜 양극화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김현종 본부장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경제가 전혀 다른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기업들의 이익 보장을 통해 발전한 미국경제와 달리, 한국은 '새마을운동'부터 정보기술중심의 '신경제', 그리고 심지어 '한류문화 육성'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으로 정부주도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발전모델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이 한국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한미FTA는 한국의 경제체제가 견뎌낼 수 있는 것 이상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의 기업들은 미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한국정부의 역할과 공공부문을 모두 '투명성에 어긋나는 무역장벽'이라고 주장하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FTA는 단순한 '무역협정'을 넘어 한국의 근대화 모델 자체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반세기 넘게 의존해 온 정부주도의 발전모델에 대한 대안도 없이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통상법 전공 미국 변호사의 경제 해법
한미FTA가 단순히 통상문제 이상이라는 점에서, 이 협상의 '수장'을 맡고 있는 김현종 본부장 역시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한국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경제도 제대로 연구해본 일이 없는 통상법 전공의 미국 변호사다. 그런 그가 '한국식 발전 모델의 종말'을 주장하며 미국식 경제체제로 업그레이드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고, 온 사회가 그 판단에 일사불란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미FTA에 반대하는 국민을 구한말의 수구파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나는 구체적인 근거없이 '한국식 경제의 종말'을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 "가망성없는 미개한 한국경제"에 혀를 차는 (그리고 얼마 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는) 50년대 미국 베버주의 경제학자의 모습을 본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을 떠나 삶 대부분을 미국에서 살아온 김현종 교섭본부장이 미국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당신은 한국인이 아니냐"라는 질문으로 몰아세우거나 비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라 "생각도 영어로 하고 꿈도 영어로 꾸는"(<신동아> 2004년 9월호) 그가 미국경제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김현종 본부장은 한국경제와 사회 일반에 대해 체계적인 지식과 이해를 쌓을 기회를 갖지 못했으며(스스로 한국에 대해서 '유학생과 토론하면서 배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그와 함께 통상부에서 일했던 동료 변호사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김 본부장은 국내법과 국내 산업, 통상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적임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신동아> 200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