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부총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주장] 혼란 야기했으니 사퇴하라니... 비이성적 폭력을 멈추라

등록 2006.08.02 10:06수정 2006.08.0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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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우려했던 주장들이 일제히 쏟아지고 있다. 어제 SBS 8시 뉴스 마무리 말에서 앵커는 "국민들이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며 이 혼란을 야기한 당사자는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혼란을 야기한 당사자"는 김병준 부총리를 가리킨다.

바로 이 주장이 김 부총리 사퇴론의 핵심을 이룬다. 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전제1: 국민들이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전제2: 이 혼란은 김병준 부총리가 야기했다.
결론: 김병준 부총리는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이 논증은 숨은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숨은 전제1: 이 혼란으로 국민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숨은 전제2: 혼란을 야기한 사람이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숨은 전제3: 고통을 준 사람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전제2는 참이 아니다. 그 혼란은 정치적 동인으로 김 부총리를 떨어뜨리려는 야당과 언론에 책임이 있다.

혼란을 준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김 부총리가 혼란을 야기한 책임이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김 부총리의 학술 활동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기정 사실화해야 한다. 이런 사실화 없이 그를 혼란의 원천으로 간주하는 것은 김 부총리를 무작정 타도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오마이뉴스>의 박형숙 기자는 '정봉주 의원의 '김병준 일병' 구하기'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관행'이라고 잘못이 덮어질 순 없다. 교수사회에 만연한 중복게재, 연구비 중복수령, 논문실적 중복보고, 학위거래 문제 등은 여전히 문제다. 개혁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런 관행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김 부총리가 교육개혁의 칼자루를 쥔다면 그 권위가 설까?"

대체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런 관행에서 자유롭지 않았던"은 입증되어야 할 사실이다.

나는 김 부총리가 완벽하게 흠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전제에 반대를 하는 것이다.

① 김 부총리는 중복게재를 했는데, 모든 중복게재는 문제가 되고 개혁의 대상이다.
② 김 부총리는 연구비 중복수령을 했는데, 모든 연구비 중복수령은 문제가 되고 개혁의 대상이다.
③ 김 부총리는 논문실적 중복보고를 했는데, 모든 논문실적 중복보고는 문제가 되고 개혁의 대상이다.
④ 김 부총리는 학위거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박형숙 기자는 위 전제들 중 하나 이상을 받아들이고 있음이 틀림 없다. 그러나 나는 위 모든 전제들이 의심스럽다.

국민들의 분노, 희생양이 필요한가?

첫째, 모든 중복게재가 문제가 된다는 주장은 분명히 지나치다.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국내외 저명한 학자들도 중복게재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이 중복게재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중복게재 중에서는 허용되는 것이 있고 허용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밀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은 김 부총리의 중복게재가 허용되지 않는 유형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오늘 <중앙일보>에서 새로운 주장을 내어 놓았다. 김 부총리의 중복게재는 허용되지 않는 유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부총리의 추가적 해명이 필요하다.)

둘째, 모든 연구비 중복수령은 예외없이 문제가 된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몇몇 사례는 그것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김 부총리의 경우가 허용되는 사례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셋째, 마찬가지로 모든 논문실적 중복보고는 예외없이 문제가 된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김 부총리의 경우가 허용될 만한 중복보고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김 부총리는 그것이 "행정적 실수"였으며, 자신이 그것을 꼼꼼하게 점검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했다. 이 잘못이 그토록 철폐해야 할 고질적인 병폐인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다.

넷째, 김 부총리가 학위거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주장은 정말이지 하나의 의심에 불과하다. 당사자나 내부 고발자 없이 무작정 의혹을 던져놓은 것에 불과하다. 비록 우리나라의 학위 수여가 이러한 의혹을 살 만한 요소가 많다 하더라도 특정 개인에게 그 의혹을 던져 놓고 그를 내려앉히는 것은 비이성적 폭력이다.

따라서 김 부총리가 개혁의 칼자루를 쥐기에 부적합하다는 결론은 합당하게 도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그는 물러나야 하는가?

열린우리당은 현재 일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으므로 누군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심정을 가지고 있다. 이 심정은 매우 비이성적이다. 부디 이성을 찾기 바란다. 부디 올바른 정치를 하라. 공동체의 건전성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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