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황전과 서오층석탑.최병윤
우리 것에, 혹은 문화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멀리서 보는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왜소해 보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기둥의 가운데 부분을 불룩하게 만드는 것이 배흘림이다.
화엄사의 각황전과 대웅전에도 이와 비슷한 수법이 쓰였다. 중층에 규모도 큰 각황전에 비해 주불전인 대웅전이 왜소하게 보이는 것을 막는 것인데 대웅전 앞으로 난 4중의 장대한 계단, 석축 앞에 가까이 대웅전을 세움으로써 각황전에 위축되는 것을 막았다.
서오층석탑을 한참을 눈길로 쓰다듬은 후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각황전 보다는 각황전 앞 석등에 놀라게 된다. 각황전 앞 석등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가장 큰 석등이라고 한다. 처음 석등을 대할 때 크기에 놀랐다면 꼼꼼히 살펴볼수록 그 정교함과 섬세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각황전 석등이 그렇듯 각황전 또한 큰 규모의 전각이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중층의 건물이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툭 터진 통층 구조로 되어 있다. 각황전은 화엄사 창건때 세워진 것이 아니라 조선 숙종 때 세워진 것이며, 원래는 장륙전이라는 3층짜리 전각이 있고 화엄경을 새긴 돌판이 사방 벽을 두르고 있었다 한다. 화엄경을 새긴 돌판은 현재 약 1500여 점 정도가 남아 있다 한다.
화엄사에서도 가장 빈번한 통행이 오가는 각황전이지만 각황전의 뒤쪽 공간은 앞 공간과는 달리 포근함과 아늑함을 준다. 뒤쪽 모서리 휘여진 바깥기둥 아래에 앉아 잠시 마음을 추스르거나 앞쪽으로 펼쳐진 화엄사의 전각들과 산자락을 살피는 맛 또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