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신이 선물한 마지막 청정의 나라

산상호수 송쿨에서 쌍무지개를 보던 날

등록 2006.07.10 15:59수정 2006.07.1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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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30일,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서 나른주를 경유 송쿨(호수)을 가려면 이곳부터 비포장도로로 해발 약 3800M 이상 고산지역을 올라야 합니다. 한여름에도 사계절을 맛보게 되는 신비의 나라 그야말로 절경이죠.

멀리 6800M에 이르는 텐산의 만년설과 광활한 초원에 양과, 말, 소, 산양떼들이 방목되는 전경을 보며 협곡을 따라 이름 모를 수백가지 신비로운 야생화들이 군락지를 이룬 초원의 화원을 동시에 볼수 있는 아름다운 환상의 비경이 숨어 있습니다.

2000m이상 고지대에서 자라는 야생화
2000m이상 고지대에서 자라는 야생화정길현
차창으로 심심치 않게 여우나 너구리 등의 동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여우를 보고있는 것인지 여우가 사람을 구경하는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을 정도로 녀석들은 차가 지나갈 때 도망 가지도 않고 지켜보는 천연덕스러운 진풍경이 이루어집니다.

해발 3500m에서 피어난 쌍무지개
해발 3500m에서 피어난 쌍무지개정길현
우리가 협곡을 오를 때에도 해가 쨍쨍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우박이 쏟아지며 어둠 속에 금세 비포장도로는 흙탕물로 범벅이 되어 미끄러운 도로로 변하고 가장 높은 정상에는 눈이 내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악조건 속에 한 40분을 달렸을 때, 고생하였다는 신의 선물이었을까? 햇볕이 나고 협곡엔 아름다운 쌍무지개가 피어났습니다. 신비로운 쌍무지개를 바라보며 작고하신 시인 임영조님의 '무지개 1'이라는 시가 절로 내 입에서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3시간을 더 달려 정상을 오르자 산상호수인 송쿨의 검푸른 물빛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시간은 저녁 9시가 되어가는데 아직도 밝은 빛이 있었습니다. 초원에 유루타(유목민들의 천막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이 환상적이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밤이면 아무 곳에서나 유성이 자주 보이고 밤하늘에 수놓은 별천지가 아름답기 그지 없는데 해발 3800M인 이곳에서 보는 별천지는 오늘 나에게 어떤 추억을 남겨줄까 기대하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왠지 먼 곳에서 밀려오는 먹구름이 심상치 않더군요.

정길현
이곳 유목민들이 우리를 위해 유루따를 만들고 잠자리 만들기에 한창이었습니다. 완성된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후드득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밤은 별천지가 아니라 비 천지만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못내 아쉬웠습니다.

양을 잡기전에 신에게 드리는 의식
양을 잡기전에 신에게 드리는 의식정길현
천막안에서 겨울옷을 입고 겨울 이불을 덮었지만 그래도 냉기가 천막안을 휩쓸고갑니다. 밤새 사납게 천막을 뒤흔들던 비와 우박은 날이 밝자 언제였냐는 듯 해가 솟고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호수를 거닐며 풀을 뜯고 물을 먹는 양과 산양들이 한 폭의 그림이었고 소록소록 자라는 풀 위에 영롱한 물방울들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까요.

말을타고 있는 현지인 샤말형제
말을타고 있는 현지인 샤말형제정길현
이른 아침 이 마을의 윗어른이신 족장분들과 유목민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손님은 신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아주 극진한 대접을 하는 것이 예부터 내려오는 관습입니다. 주민들이 모두 모이자 족장은 우리에게 갓 잡은 어린양을 고기로 선물한다고 양을 잡는 의식에 들어갔습니다.

송쿨호수변을 거니는 소와 양떼들
송쿨호수변을 거니는 소와 양떼들정길현
이들은 양을 잡기 전에 모여 양 앞에서 양식을 주신 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양의 영혼을 비는 의식을 마친 다음 양을 잡습니다. 양을 잡는 데는 여자들과 어린아이는 낄 수 없으며 남자들만 모여 이 의식을 행한다고 합니다. 비롯 말 못하는 미물이지만 영혼을 빌어주는 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해발 3800m, 길이 60km, 폭 30Km인 송쿨호수
해발 3800m, 길이 60km, 폭 30Km인 송쿨호수정길현
우리가 묵고 있는 유루따 주인집은 노모 한분과 부인, 그리고 아들 두형제를 두고 있었습니다. 샤말이라고 만난 이 어린이는 우리로 말하면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그런데 유목민 후손답게 말 타는 솜씨가 어른 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추앙받은 '앙으르' 새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추앙받은 '앙으르' 새정길현
이 깊은 산속에서 학교가 없을텐데 애들은 학교를 다니고 있느냐고 묻자 말을 타고 해발 2000M 되는 곳에 마을 학교가 있는데 매일 혼자 말을 타고(왕복 3시간) 학교에 다닌다고 합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저녁에 샤말이 말을 타고 양떼와 소떼들을 몰고 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0살이면 한창 어린 응석을 부리는 나이인데 동생을 돌보며 집안일을 돕는 이 어린이가 너무나 대견스러웠습니다.

우리는 해발 3800M 고지이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무엇에 눌리는 듯 말하기도 힘이 차던군요. 이것을 잊기 위해 이들은 보드카를 먹어야 한다고 하지만 힘이 드네요.

송쿨 호수에 소와 산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사진입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 크다는 이식쿨 호수가 있습니다. 크기가 우리나라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합친 크기이니 가도가도 끝이 없는 호수이죠. 송쿨 호수는 키르기즈에서 두번째로 큰 산상에 있는 호수입니다. 눈이 녹아 흐르는 맑고 차가운 물은 한여름이었는데도 오랫동안 발을 담그니 춥더군요.

마을의 족장과 찍은단체사진(가운데 검은예복)
마을의 족장과 찍은단체사진(가운데 검은예복)정길현
참고로 산상호수인 송쿨에 가실 때에는 한여름에도 겨울옷을 꼭 준비하셔야 합니다. 협곡에 들어서면서부터 한낮에도 영하의 날씨로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마을에서 밤을 맞이할 때는 당연히 영하권이라서 추위에 감기조심을 하셔야 합니다. 낮에 당연히 해가 있으니 여름 날씨이지요. 그래서 이곳에 오면 4계절 기온을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키르기스스탄에서 신성한 새로 절대 잡아 먹지 못한다는 "앙으르"라는 새를 보았습니다. 아주 보기가 힘든 새라고 하더군요. 하이얀 머리에 검은 부리를 하고 있고 몸은 주황과 노랑사이의 새인데 보기에도 예쁘다는 생각보다 먼저 신같이 존경스러움이 우러나는 아주 신비로운 색깔의 새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이 새를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믿으며 추앙받는다고 합니다. 사진을 찍는데도 현지인들이 알라신에게 기도할 때처럼 손을 모아 기도하며 절대로 새가 놀라지 않도록 가까지 가지 말라고 으름짱을 놓았습니다.

이틀동안의 여정을 끝내고 주민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언제 다시 이들을 다시 볼 수가 있을까요. 키르기스스탄에는 자주 들어가지만 이곳 해발 3800M가 넘는 송쿨에는 좀처럼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워낙 길이 험하여 감히 겨울엔 미끄러워 아무도 산을 넘어갈 수가 없는 고립된 오지입니다.

이곳 현지인들도 가본 사람이 얼마 되지 않을 정도니까요. 다시 역으로 나른지역으로 협곡을 넘어오는데 현지인들이 한 곳을 꼭 소개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곳에 폭포가 있는 것을 잘 모른다고 하였고 이름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미스터 정(본인의 성임)이 이곳의 사진을 찍어 소개한다면 이 폭포는 이름이 없으니 이름을 '미스터 정 폭포'라고 이름짓자고 하더군요(내심 기뻤지만 인사치레였겠죠).

폭포의 길이는 약 15M는 족히 되겠더군요. 산에서 눈이 녹아 쏟아지는 물이 아주 힘찬 소리를 내며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물살이 빨라 폭포 근처에는 갈 수가 없어 멀리서 카메라에 의지해 볼 수밖엔 없어 아쉬웠습니다.

농약이 없는 나라, 한여름에도 계곡에서 눈 녹은 물이 쏟아지는 나라, 도시가 높은 고지대에 있어 비가 와도 금방 물이 빠져 물난리가 없는 나라, 한여름에 40도를 넘는 무더위에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에어콘이 없이도 살 수 있는 시원한 나라, 자원이 많지만 아직도 미개발로 인해 많은 자원을 저축된 나라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폭포 (일명 미스타정 폭포)
알려지지 않은 폭포 (일명 미스타정 폭포)정길현
우리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하게 있는 나라, 신이 내려주신 지구상에 마지막 신비의 청정지역 키르기스스탄에 여러분들도 한번 가보시기를 추천드리면서 키르기스스탄 송쿨호수를 소개해드렸습니다.
#키르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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