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차, 한 조각 마음 담겨"

지친 마음 내려놓는 수종사

등록 2006.06.27 10:21수정 2006.06.27 15:59
0
원고료로 응원
경기도 남양주시 운길산(蕓吉山)을 찾았습니다. 봄날에 가야 제 멋을 알 수 있다는 데, 하늘이 잔뜩 찌푸린 장마철에 갔습니다. 초의, 다산, 추사가 머물렀다는 수종사(水鍾寺)를 품은 곳. 차 맛이 일품이라지요. 산사 풍광도 '천하제일(?)'이라고 합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유월의 밤꽃 흩어진 운길산


두물머리가 보이는 수종사
두물머리가 보이는 수종사김정삼
지난 25일 오후 3시 장맛비를 머금은 하늘을 보다가, 뒤늦게 용기를 내 짐을 꾸렸습니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경기 북부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양수대교에 못 미쳐 내렸습니다.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삼거리. 멀리 산중턱 움푹 들어간 곳이 수종사로 보입니다. 그 방향으로 무작정 발길이 갑니다. 얼마쯤 가니 철길 건널목이 막아섭니다. 부드러운 침목(枕木)을 밟았습니다. 건널목을 건너 한참 걸어서야 운길산 입구에 당도합니다.

오후 5시. 하지(夏至)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유월의 밤꽃이 산길에 흩뿌려진 걸 보니, 어느 새 계절이 지나는 게 보입니다. 첫 산행이라 다른 길은 모릅니다. 구불구불 이어진 가파른 산길 도로를 따라 30여 분, 산 중턱에 다다릅니다.

오른편으로 수종사를 가리키고, 왼편으로 정상을 가리키는 팻말이 보입니다. 산꼭대기를 먼저 보기로 했습니다. 나무 계단과 쇠줄로 안내하는 등산로는 사람 냄새를 많이 풍겨, 그리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30여 분 오르니 운길산 정상입니다. 산 위 하늘은 온통 구름 떼. 구름이 멈춰선 곳이라는 지명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세를 보다가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하산길은 수종사로 가는 길입니다.

너른 마당에 펼쳐진 '두물머리'


산사로 가는 길은 바람의 연속입니다. 줄지어 늘어선 돌탑들이 기도 도량이라고 알립니다. 그 돌탑을 좇아 산사 들머리에 다다릅니다. 먼저 보이는 것이 약수터.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 조심하라는 듯 말하는 묵언(黙言) 팻말. 이 단어로 범인(凡人)이 호기심에 찾은 곳은 구도자들의 공간임을 직감합니다.

산사에 울리는 종소리
산사에 울리는 종소리김정삼
경내로 발을 옮기자마자 어디서 종소리가 울립니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소리일까요. 종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습니다. 턱수염이 텁수룩하게 난 스님 한 분이 절도 있게 종을 칩니다. 몇 번 울렸는지 세지 않았지만, 그 진동은 경내를 구석구석 흔들어 깨웁니다. 그 종각 옆에 너른 마당이 있습니다. 마치 여행자를 기다렸다는 듯 두물머리 풍경이 펼쳐집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몰려 있어도,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진 강물은 유유히 흘러갑니다. 이 풍광 앞에서 잠시라도 구도자의 마음을 간직하라고 말하는 거겠지요. 부부사이로 보이는 여행자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그렇겠지요. 풍광에 한참동안 빠져 있다가 경내에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차를 무료로 보시하는 삼정헌
차를 무료로 보시하는 삼정헌김정삼
그 너른 마당 옆에 '삼정헌'이 있습니다. 산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차를 내어주는 곳이지요. 저녁 7시가 다 된 시각이라 문은 닫혀져 있습니다. 경내 입구에서 마신 물맛을 떠올리며 짐짓 아쉬운 마음을 달래봅니다.

"수종사는 천년의 향기를 품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온 누리에 울리며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고사인데 절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흘러나와 땅에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낸다."

다산 선생이 예찬하는 수종사는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가 차를 즐겨 마셨던 곳입니다. 그래서 수종사 물맛과 차 맛은 천하일품이라고 말합니다.

지친 마음 내려놓는 산사일 뿐

기도도량 수종사
기도도량 수종사김정삼
경내는 그리 넓지 않지만 아담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대웅전, 경학원, 종각, 산신각, 종무소 등등. 한 여행자가 대웅전 앞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어떤 명성을 간직한 수종사라고 하더라도 기도 도량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세조가 심었다는 5백년 은행나무
세조가 심었다는 5백년 은행나무김정삼
산사는 지친 마음을 내려놓는 곳일 뿐입니다. 굳이 불교를 내세우지 않아도, 민중들이 기복을 비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장마철이 지나면 땡볕이 찾아듭니다. 한잔 차 맛, 한잔 물이 그리운 때 입니다. "한잔의 차 한 조각 마음에서 나왔으니, 한 조각 마음 한잔에 담겼네. 이 차 한잔 맛보시게, 한번 맛보면 한량없는 즐거움이 생긴다네." 함허 스님의 차가(茶歌)가 어울리는 수종사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취미활동으로 등산, 명상을 좋아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