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리더십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개혁정치 아마추어들이 이 나라 정치구조의 진화를 최소한 20년 이상 퇴행시켰다. 1998년 정권교체 이후 맞이한 10년의 기회를 원위치 시켰으며, '노무현 학습효과'로 인해 앞으로 10년 이상 집권 기회를 못 가질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태를 최악으로 악화시켰다. 노란 하늘이 아직 실감나지도 않을 것이고,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대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상태라면 두고 볼 것도 없다.
침몰하는 노무현 정부, 왜?
내가 위에서 개혁정치 아마추어라고 지칭한 사람들은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싼 집권세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든 지지자들까지 포함한다. 아마추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개혁만 부르짖으면 개혁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말을 바꾸면 집결세력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부르짖으면 개혁이 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역사상 그렇게 이루어진 개혁은 없다.
노무현 정부는 왜 실패하고 있는가? 지지세력 결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왜 지지세력 결집에 실패했는가? 정권을 만들어낸 전통적 지지세력의 확대가 아니라, 새로운 지지세력으로 전통적 지지세력을 교체하려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적 지지세력의 중심축인 호남이 수행해왔던 민주개혁의 역사적 정당성과 지위를 하루아침에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터무니없는 이데올로기는 개혁세력을 완전히 지배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개혁정치 아마추어들이 호남을 개혁의 토대로 삼아 호남과 개혁세력의 연대를 확대ㆍ강화하기보다는 호남이라는 지역관념을 없애야만 개혁이 확대ㆍ강화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청산대상이었다. 당연히 역사의 문제는 이렇게 제기됐다. 저항하는 호남이 사라지면 패권을 추구하는 영남도 사라질 것인가? 영남 출신 노무현 대통령의 장밋빛 환상은 이런 것이었다.
"저는 이와 같은 것이 보기에 따라 호남을 기반으로 했던 민주당만 먼저 분열되고 한나라당은 당당하게 저렇게 서 있으면 호남만 분열되고 오히려 고립되는 것 아니냐라는 불안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겠지만 그러나 저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역, 말하자면 증오와 분노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자기 당의 결속을 유지해 왔던 그런 정치질서의 총체적 붕괴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한다."(<인터넷 한겨레>, 2003년 9월 17일)
총체적 붕괴??!! 노 대통령의 '생각'이 만들어낸 참담한 현실을 좀 보라! 노 대통령의 장밋빛 환상 덕분에 한나라당은 공룡이 되어 돌아왔다. 그나마 공룡이 된 한나라당에 강철처럼 맞서 버텨낸 건 호남뿐이다. 개혁을 떠들던 장삼이사의 표는 다 어디로 갔는가? 이러니 호남이 누굴 믿겠는가!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상상했던 '지역관념 없는 개혁(?!)부동층'을 흡수해 다시 완벽하게 "호남만 분열되고 오히려 고립"시키고 게임을 끝냈다.
도대체 이 엽기적인 실패에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아니 그들이 책임의식이라도 있을까? 오히려 "대한민국은 이미 일정한 궤도 위에 올라와 있어 국민은 과거보다 여유 있는 입장에서 집권세력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인터넷 중앙일보> 2006년 5월 15일)는 유시민 장관의 염장지르는 소리만 들린다. 이런 식이라면 "호남만 분열되고 오히려 고립"시킨 책임을 묻는 나의 시선은 호남근본주의자의 구시대적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지세력 분열, 이유는 있다
제발 이제 보고 싶은 환상만으로 세상을 규정하지 말고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좀 직시하기 바란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호남이라는 관념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수도권의 상당수 호남 유권자는 한나라당에 기꺼이 투표했다. 이는 역사상 어떤 독재자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렇게라도 지역구도가 허물어졌으니 축하할 일인가? 호남이 그럴진대 DJP연대를 통해 가까워진 상당수 충청 유권자가 한나라당에 다시 귀환한 것도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