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주장은 개인 재산과 기업의 재산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보수언론의 무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유한양행의 지분을 사회헌납한 유일한 박사와 쇼이치로 도요타 도요타 회장.
상속세 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주장은 개인 재산과 기업의 재산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보수언론의 '무뇌아적'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상속세는 주주 개인의 재산에 대하여 부과되는 것이지 기업의 재산에 대하여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상속세 부과로 주주가 바뀔 수는 있지만 기업의 재산이 감소되지는 않는다.
이 말은 '상속세 때문에 창업자의 지분이 감소되면 경영권이 불안정하여 결국 기업이 망할 것이라는 뜻이다'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그런가?
가장 존경받아야 할 기업인 유한양행을 보자.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는 재산을 전부 사회에 환원하였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아 수십년간 알짜 기업으로 키워오고 있다. TV 토론에서 유한양행을 '실패한 기업'이라고 단정하는 외계인적 사고를 가진 언론인이 있기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도요타 자동차의 설립자 아들인 도요타 쇼이치로의 지분은 현재 0.4%에 불과하고, 도요타 가문의 전체 지분은 2%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높은 상속세(현재 일본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 이지만 불과 3~4년 전만 해도 70%였다.)가 설립자 가문 지분 감소의 주요 요인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보수언론의 생각대로라면 도요타는 망해도 벌써 망했어야 한다.
기아자동차를 예로 들어 '주인 없는 기업'은 대부분 망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 망한 예를 들자면 '주인 있는 기업'이 훨씬 많다. 쌍용, 진로, 동아, 해태, 삼미 등은 철없는 2세가 세상물정 모르고 겁 없이 덤비다가 말아먹은 기업들이다.
기업의 성패는 최고 경영자가 유능한 경영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갈라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누가 봐도 경영능력이 있다고 인정된다면 설립자의 아들이 최고경영자가 되던 조카가 최고경영자가 되던 따질 사람은 별로 없다. 못난 목수가 연장 탓하듯이 기업의 운명을 상속세 탓으로 돌리지 마라.
미국의 상속세를 통하여 우리의 자화상을 보자
위에 비해 좀 더 이성적인 주장은 상속세를 없앤 몇몇 국가를 비교하여 우리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상속세의 존재 의의는 그 나라가 갖는 역사적 환경과 다른 세제와의 연관성 속에서 종합적으로 고려돼야지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단순하게 주장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속세 폐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계기는 미국 부시 대통령의 상속세 폐지 공약 때문이므로 미국의 경우를 살펴 보자. 미국의 경우, 증여세는 존속시키되 상속세는 2010년에 한시적으로 폐지되는 법안이 2001년에 통과되었다(그나마 의회에서 별다른 결의사항이 없으면 2011년에는 2001년 수준으로 다시 부활하도록 되어 있다).
미국의 상속세는 1862년~1870년과 1898~1902년 사이에 한시적인 세금으로 도입되었다가, 1916년에 현재와 같이 항구적인 세금으로 다시 도입되었다. 상속세가 도입될 당시를 보면,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매우 심각할 때였다.
1860년대 산업혁명과 독점화시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빈부갈등은 극에 달해 1896년 대통령 선거는 부자와 빈자가 정면으로 대결하는 양상을 띠어 필라델피아에서는 파리코뮌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반독점입법과 상속세 및 재산세의 도입 등 법과 제도로 부자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증여세는 1932년에 항구적으로 도입되었는데,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재력가들이 지배하는 정부도 폭도가 지배하는 정부만큼 위험하다"고 말할 정도로 부자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사회분위기가 그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는 미국의 부호들이 ①기부나 세금을 통하여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②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정치사회적 외풍에서 비껴나가도록 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미국의 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본격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설립자 가문은 재산을 신탁에 맡겨 관리하면서 이사회에 참여하여 전문경영인인 최고경영자를 감시하는 수준으로 기업경영에 참여하였다.
이처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미국사회에서도 진짜 부자들인 빌게이츠,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 데이비드 록펠러 등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기 위해 '책임 있는 부자'라는 단체를 만들어 열심히 목청을 높이고 있다. 보수언론의 시각에서 보면, 반윤리적인 상속세 유지를 주장하는 이들 역시 반윤리적이다.
모든 것은 변하는 법, 상속세 역시 언젠가는 변하거나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상속세가 생겨난 데에는 사회적 배경이 있듯이, 없어지기 위해서도 그에 필요한 사회적 배경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 기형아인 재벌체제가 여전히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데도, 상속세를 폐지하자고 한다. 분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