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석' 문재인, 부산에 투정할 일 아니다

[김욱 칼럼] 세련된 정동영, 노골적인 한화갑

등록 2006.05.16 10:35수정 2006.05.16 14:58
0
원고료로 응원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오마이뉴스 권우성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까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건 아무리 따져 봐도 어쩌다 나온 말실수가 아니다. 이건 분명히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나온 정략적 의도를 가진 발언이다.

따라서 이 발언에 대해 다시 논박을 하는 것이 문재인 전 수석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말해야겠다. <연합뉴스>에 보도된 문 전수석의 발언을 정확히 인용한다.

"대통령도 부산출신인데 부산시민들이 왜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연합뉴스>, 2006년 5월 15일)

나는 열린우리당의 이데올로그들이 2003년의 분당과정에서 토해 냈던 발언들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다. 따로 반복하지 않는다. 그런데 2006년 5월, 문 전 수석은 부산시민들에게 왜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냐고 투정하고 있다.

문 전 수석에게 묻는다. 그럼 정말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모든 정치적 행위를 '부산정권'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생각해도 좋은가? 선거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다급해서 나온 의미 없는 정치적 수사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런가? 그렇다면 자신의 하소연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이 부연설명은 뭔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신항 및 북항재개발, 인사 등 정부로서는 거의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을 쓰고 지원을 했는데 시민들의 귀속감이 전혀 없다, 엄청 짝사랑하는 것 아니냐"(<연합뉴스>, 2006년 5월 15일)

'왕수석' 문재인의 투정


알만하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문 전 수석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더 한층 실감난다. 다시 읽어 보자.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을 쓰고 지원을 했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하기에 따라서는 그런 '신경 쓰지 않고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이는 지역정책이란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거의 기계처럼 판단되어 공평무사할 수밖에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주장과도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지역소외감, 지역갈등, 이런 것 다 정치인이 만들어낸 허구다. 지역문제를 고려한 특별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것이 지역문제 해결책이다. 분명히 말하겠다. 대구 출신 대통령이 무소불위 권력으로 국가의 자원을 주무를 때 진짜 호남을 소외시켰나? 인정할 수 있나? 그 30년 동안 대구 경북이 살이 찐 부자가 됐으면 얼마나 부자가 됐나? 부산 경남 대통령 시절과 호남 정권 시절에 대구 경북이 소외됐다고 할 수 없다. 경쟁, 그 지역의 기획역량이 중요하다. 호남소외론이 무슨 소리를 해도 거기에 귀를 기울일 생각은 없다. 영남 지역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조선닷컴>, 2003년 8월 19일)

부산시민들이 문 전 수석의 발언처럼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을 쓰고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정권이라는 귀속감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노 대통령이 강조하듯이 '경쟁'이나 '그 지역의 기획역량' 덕에 그런 사업이 시행된 것이지 특별히 노무현 정부가 생색을 낼만한 특혜는 아니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이런 '당연한' 지역사업을 가지고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 표를 달라고 하는 문 전 수석을 나쁘다고 생각할 지 모르는 일이다.

그럼 이 시간에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당의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광주가 아주 소중한 듯 하다. 그는 지난 9일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당의 광주시장 선거 승리는 시장선거에 그치지 않고 5·31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광주를 놓치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 승리하더라도 5·31 지방선거 패배를 의미한다"(<오마이뉴스>, 2006년 5월 10일)

이해가 되는가? 열린우리당에게 수도 서울도 아니고 일개 광역시 광주를 놓치는 것이 왜 다른 지역에서 승리하더라도 지방선거의 패배를 의미하는 걸까? 이는 열린우리당이 입만 열면 호남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광주라는 지역에 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낯 뜨거운 고백일 뿐이다. 정동영 의장은 과거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전북의 당"이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으므로 그에게서 이런 발언을 듣는 것은 이제 별로 낯설지도 않다.

물론 문 전 수석과 정 의장의 발언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긴 하다. 문 전 수석은 부산시민들에게 '지금까지 이렇게 했으니까 표를 달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 정 의장은 '표를 주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구상을 실천할 것'이라는 말뿐인 약속을 내놓고 있다.

어쨌든 광주시민 역시 그런 약속이 실현되더라도 그것은 지역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노 대통령이 강조한 '경쟁'과 '그 지역의 기획역량' 덕분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 투표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논리적으로 맞다.

세련된 정동영, 노골적인 한화갑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이 논리적 난장판에서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또 뭘 하고 있을까?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면서 열심히 뛰고 있다.

"민주당은 우리를 전통적으로 지지해준 이 지역을 잊지 않고 있다. 이 지역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민주당을 도와달라. 열린우리당은 탄생할 이유가 없는 정당이다. 지역당을 배격하고 민주당을 부패정당, 개혁할 줄 모르는 정당이라고 매도하며 개혁정당을 만들었다고 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당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분당했다고 했다. 이것이 본심이다."(<연합뉴스 보도자료>, 2006년 5월 15일)

독자들의 취향에 따라서는 현실의 토대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여 "이 지역(호남-필자주)을 정치적으로 대변한다"고 주장한 민주당 한화갑 대표식의 노골적인 표현이 싫을지 모른다. 이런 표현보다는 사실이 그렇더라도 "광주를 놓치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 승리하더라도 5·31 지방선거 패배를 의미한다"는 정동영 의장 식의 세련된 발언이 더 호감이 갈 법도 하다. 왜냐하면 지역을 말하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진화의 방법은 현재의 조건상 딱 한가지다. '호남(과 그 외 소외지역) +개혁세력'의 연대다. 단언컨대 이 이외에는 어떤 방법도 안 통하게 돼 있다. 역사적 경험이 웅변하고 있다. 그런데 호남 및 연대지역은 완전히 분열되었으며, 개혁세력은 호남을 부끄러워하며 그 극복만을 외치고 있다.

예컨대 민주노동당은 '계급모순'만이 모든 것이라며 아예 지역 외면정책을 자랑하고, 열린우리당은 지역문제는 외면하면서 '지역적 표'만 달라는 위선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배 이데올로그들은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처럼 노골적으로 지역문제를 거론하는 소수정당에 대해서는 조롱하라고 가르치기 바쁘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왜 안 떨어지는지 모르겠다고? 이렇게 설명을 해주는데도 모르겠다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남은 걱정 하나. 이 분열 속에서 한나라당이 모든 것을 가져가면 어떡할 것인가. 걱정하는 사람이 바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나 이명박 서울시장이 집권해도 상관없다고 했는데'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소신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나라가 망하진 않는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이미 일정한 궤도 위에 올라와 있어 국민은 과거보다 여유 있는 입장에서 집권세력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인터넷 중앙일보> 2006년 5월 15일)

어쩌면 대연정을 제안한 노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생각을 그렇게 꼭 빼닮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이병완 실장은 또 5월 지방선거에서 호남지역을 제외하고 한나라당이 '싹쓸이'할 경우, 급격한 '레임덕' 현상이 닥치고 종래에는 정권을 한나라당에 내줄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크다는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도 '내가 꼭 정권을 재창출해야 될 의무가 있습니까'라고 반문해 깜짝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정권 재창출보다는 나라의 미래 위기를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설령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하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오마이뉴스>, 2006년 1월 18일)

통탄할 집권세력의 위선과 무책임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장관'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했으므로 이제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도 아무 미련도 없는 '여유 있는 입장'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전략적 실패의 피눈물나는 희생자들은 '아님 말고'식의 그런 여유가 없다.

내가 노 대통령과 유 장관에 대해 분노하는 이유는 그 황금 같은 시간동안 모든 걸 놔두고 악착같이 민주당의 법통을 부정하는데 일로매진한 사람들이 5ㆍ18 광주학살의 유산, 한나라당의 역사적 정통성ㆍ정당성을 승인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고분고분하게 현실을 핑계로 멋과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답해보라! 거꾸로 된 정의 아닌가. 선거가 가까워 오니 모든 '위선과 무책임'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통탄할 일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3. 3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4. 4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5. 5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