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해남 땅끝마을은 무척 멀었다. 혹시 어머니께서 차멀미라도 하실까봐 속력을 낼 수 없었던 탓에 목포에서 해남까지 가는 데에만 두 시간이 족히 걸렸다. 뒷좌석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는 중간 중간마다 '아직도 멀었느냐?'며 많이 힘들어 하셨다. 마을에서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꼭 마을카수(가수)로 초청되어 그 특유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청중을 압도하시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막내 손녀딸을 데려오지 못한 서운함으로 재미를 잃어버리신 어머니는 해남 땅끝마을이 멀기만 하셨던 듯하다.
하지만 이 땅끝마을을 언제쯤 다시 어머니께서 와 보시겠느냐는 고집스런 생각으로 희뿌연 황사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땅끝 전망대를 오르는 모노레일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발을 디딘 한반도의 끄트머리 땅은 그러나 짙은 흙먼지에 휩싸인 바다만 눈앞에 희뿌옇게 펼쳐져 있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는 안내인의 말에 따라 우리는 결국 희뿌연 황사 농무 속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한라산을 그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황사를 피해 내려와야만 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몸을 실은 모노레일 속, 갑자기 아내의 휴대전화기가 요란한 진동음을 낸다. 휴대전화기를 꺼내든 아내가 액정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어느새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무슨 영문인지 궁금해 낚아채듯 아내의 휴대전화기를 넘겨받았다. 막내딸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였다.
'엄마--엄마는 어디 가지 말고 만날 내 곁에 있어줘야 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엄마의 영정 앞에서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오열하는 친구를 두고 적어 보낸 막내딸의 가슴 저미는 메시지였다. 얼마나 친구의 불행한 처지가 절절하고 안타까웠으면 그 막대기 같은 녀석이 이렇게 애절한 문자를 다 보냈을까?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까지도 내내 막내딸 녀석의 문자 메시지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나를 무척 당혹스럽게 했다. 올 들어 유난히 허약해지신 노모(老母)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효성(?)스런 마음으로 다녀왔던 여행이 실은 불효막급이었다는 자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저 어린 딸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만날 내 곁에 계셔주시기를 원해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어린 딸만도 못한 생각으로 행여 천수를 다 누리신 어머니의 마지막 여행이 되기를 털끝만큼이라도 바라지는 않았는지?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차창 밖으로 간간이 짓궂은 흙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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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어디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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