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갑이 돼버린 지하철

파업 중인 지하철 1호선 퇴근길 탑승기

등록 2006.03.03 20:44수정 2006.03.0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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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노조 파업 이틀째인 2일, 퇴근 후 부천 집으로 가기 위해 평소처럼 버스를 타고 지하철 1호선 대방역에 내렸다. 지하철역 입구 여기저기 붙어있는 안내문은 파업중임을 알리고 있었다. 개찰구를 나서자 알림판에는 인천행 열차 표시가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후 안내방송이 있었다.

"인천방향 열차는 안내판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금 인천행 열차는 남영역에 도착해 있습니다."

열차 이동상황과 파업 때문에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역무원의 방송이 거듭하였다. 지하철 1호선은 철도공사 소유가 많아 다른 노선보다 결행이 많다고 하였다. 나는 열차가 다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5분 만에 대방역에 나타난 열차는 이미 사람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 '이번에 타지 못하면 추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하고 다음 열차도 탈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한다' 는 생각에 앞사람을 따라 밀면서 열차에 올랐다.

"아저씨, 그만 밀고 다음 차 타세요! 사고 나겠어요!"

힘겹게 오른 열차는 얼마 후 2호선과 만나는 신도림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면서 혼잡은 극에 달했다.


"잠깐만요! 저 내려야 되요!" "아니, 내리고 타자니까요!" "아악!", "밀지 마세요!" "이거 정원초과 아니야?" "아저씨, 그만 밀고 다음 차 타세요! 사고 나겠어요!"

지하철이 아닌 "지옥철". 여기저기서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철이 아닌 "지옥철". 여기저기서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윤대근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나도 이리저리 밀리면서 선반을 잡고 버텼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버린 열차는 출입문을 수차례 열고 닫고서야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열차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떠나는 열차를 얄밉다는 듯 쳐다보거나 아예 등을 돌리기도 하였다.


여기저기서 불평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일은 차라리 학교 앞에서 자야겠다" "협상이 좀 잘 돼서 파업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파업하는 거야?"

파업에 대한 불평은 이내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은 뭐 하는지 몰라, 참!" "국회의원들은 지하철을 안 타니 이런 사정을 알기나 하겠어?"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생기는 혼란에 익숙해졌는지, 시민들은 마치 머리를 위로하고 서 있는 성냥갑 속의 성냥처럼 부동자세와 떠밀림을 반복하면서도 이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높아진 시민의식, 서민의 발 빨리 정상화해야

마침내 송내역에 도착한 나는 사람들과 함께 승강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한숨을 크게 쉬고, 옷을 매만지면서 한마디씩 하였다.

"어휴 가슴이 터진 줄 알았네!" "이거 진짜 지옥철이 따로 없구먼!" "내일은 어떻게 출근할지 걱정이네!"

개찰구를 통과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다른 날보다 무거워 보였다. 나는 지하철에서 억눌린 가슴을 활짝 펴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갔다.

몇 번의 지하철 파업을 겪은 탓일까? 아니면 노동자와 서민들의 어려운 생활과 아픔을 잘 알기 때문일까? 지하철 파업으로 인한 예전과 같은 큰 혼란은 없어 보였다. 파업과 정부에 대한 볼멘소리가 있었지만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을 대하는 시민의식도 높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 아니다. 불편함을 감수해준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파업이 마무리되어 지하철이 서민의 발로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파업 3일째인 오늘도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노사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시민들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로 정부와 철도공사 그리고 노조가 적극적인 타협과 양보의 자세를 갖기를 많은 사람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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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치는 일과 스치는 생각 속에서 나와 우리의 변화와 희망을 위한 상상력이 필요한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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