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을 웃어넘길 수도 있어야

'지하철 결혼식' 해프닝을 귀여운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등록 2006.02.20 11:14수정 2006.02.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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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빈이 인기를 끌던 무렵이었던 거 같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방송을 타던 TV프로그램 중에 '폭소클럽'이라고 기억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서양 어느 나라에선가 만든 프로그램이었는데, 시민들을 대상으로 짓궂은 장난을 쳤을 때 보이는 재미있는 반응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몰래카메라'의 일종이었다.

시민들의 모자를 뺏어 달아나기도 하고, 들고 있는 음식을 뺏어 먹기도 하는 등, 우리의 상식으로는 너무 짓궂다 싶을 정도의 '장난'이 가득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게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싶은 생각을 했었다.

아마도 한국에서라면, 그 정도 장난이라면 얼굴 붉히며 큰소리 칠 사람들이 있을 것 같고, 그걸 공중파 방송용으로 촬영했다면 반발의 목소리가 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군인들의 '공포정치'가 불과 십 몇 년 전까지 사회를 지배했고, 양반의 체면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의 문화는 아무래도 '장난기' 코드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문득 요즘엔 TV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폭소클럽'인가 하는 프로그램이 떠올랐던 것은, 지하철에서 젊은이 한 쌍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깜찍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각자 갈 길을 가다가 우연히 모여든 승객들을 하객삼아 결혼식을 올린다는 발상. 아무나 해낼 수 없는 발랄하고 기발하고도 귀여운 발상이다. 감동은 이런 사소한 일탈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커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깜찍한 행위가 '뻥'이었다는 데 있다.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는 이유는 그들이 뻥을 친 다음에 '뻥이요~'를 외치지 않았다는 거다. '장난'이 발단이 된 해프닝이 여론을 통해 사회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한 네티즌은 "국민을 우롱한 짓"이라며 "아무리 연기를 잘했어도 당신들은 가슴이 없기 때문에 큰 연기자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다. '장난을 쳤으면 장난이라고 말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라는 게 이 해프닝에 대한 일반적인 여론인 듯 하다.

맞는 말이다. 불특정 시민들을 상대로 거짓행위를 했다면 그 취지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정당한 매너이다. 그것이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웠던 도덕과 윤리, 혹은 시민의식의 기본인 거다. 하지만, 연기를 전공한다는 그 대학생들이 한 '나쁜 짓'을 한번 보자.


누가 봐도 가슴 따뜻해지는 훈훈한 장난이다. 단지 그것을 한 다음에 '장난이었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그 '아이들'을 매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교과서적이고, 너무나도 딱딱하다. 마치 교실에서 윤리선생님이 학생들을 앉혀놓고 교과서를 가르치는 장면처럼 경직되고 재미없는 모습인 거다.

하나에서 열까지를 모두 생각하지 못한 것은 어리기 때문이라고 치면 어떨까. 사회학도나 정치학도가 아닌 연기자를 지망하는 끼 많은 청춘들이기에 그럴 수도 있었겠다, 생각해보면 어떨까. "허허 고놈들 참" 하고 웃어넘겨 버린다면 어떨까. 우리 사회의 시민 윤리에 구멍이라도 나는 걸까?


유머와 농담과 장난이 넘쳐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사람들을 보면서 웃음이 넘쳐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이번 '지하철 사건'처럼 깜찍한 발상이 곳곳에서 넘쳐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이번 해프닝을 보며, 고정관념을 벗어난 사소한 일탈에 눈감아주며 '허허' 웃어넘길 줄 아는 관용의 미덕이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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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기쁨을 느끼고자 합니다. 오마이 뉴스를 통해 사회에 대한 시각을 형성해 왔다고 믿는데 이제는 저의 작은 의견을 개시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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