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설익은 '직필'은 사람을 죽인다

등록 2005.12.05 11:31수정 2005.12.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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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질, 함부로 할 것이 아니다"(11.24, SBS 전망대)라는 글을 통해 진중권씨는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MBC PD 수첩의 의혹 보도에 대한 다수 시민들의 거부 반응에 대해 이렇게 훈수를 두고 있다.

한마디로 "무례한" 훈수라 아니 할 수 없다. 도대체 "질"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함부로 하는 말 아닌가. 이런 식의 훈수들이 요즈음 PD 수첩 보도를 둘러싼 논란의 한 단면이다. 좀 핵심을 비켜선 지적이지만 차제에 이런 태도에 대해 꼭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안 된 이야기이지만,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에서도 최근 일부 < PD 수첩 >의 보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다루는 보도에서 이런 훈계식의 무례한 태도들이 일부 발견되고 있다. 겸손치 못한 언행은 바로 설익은 행태의 황색 저널리즘과 연계되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러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왜 분노하는지를 먼저 심층 취재하는 태도가 부족하다. 단순히 무언가 침체된 경기로 인한 불안감과 불만족이 분출하는 형태라는 식으로 치부될 성질의 것이 아님에도, 이상한 반항적 시류로만 그 반응들을 질타하는 데는, 심하게 말하면 일부 진보인사들의 자신들만 갖고 있다고 믿는 도덕적 우월감에 기댄 분석이라는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그 도덕적 기반이 바로 자기들이 존중해야 할 시민사회로부터, 다수의 시민들로부터 나왔음을 망각한 처사다. 자기가 훌륭해서 남들과 다른 도덕적 우월감이 있는 것이 아님을 착각하는 무례함이 있지 않은지 차제에 깊이 성찰키 바란다.

줄기세포의 연구를 둘러싼 'PD 수첩' 보도는 윤리적 차원의 문제의식과 사실관계의 의혹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자신들의 취재 역시 윤리적이어야 하고 정확한 사실확인을 엄밀히 거친 보도여야 함에도, 이런 기본적 보도의 틀 자체가 부정되고 반박된다면, 당연히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할 것이고, 오히려 조롱하고 비난할 것이다. 이로 부터 비롯된 보도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무슨 무식한 '애국질'인지 납득이 안 된다.

"종양이 발견되면 즉시 제거해야 한다. 종양을 없애려 몸에 칼을 댄다고 '왜 사람을 괴롭히냐'고 비난하며 수술을 못하게 하는 것은 종양을 더 키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과연 그게 황 박사를 위하는 길일까요? 과연 그게 조국을 위한 길일까요?"라고 일갈하는 진중권씨의 글이 바로 일부 진보인사들의 의식을 대표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 종양이 도대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자신의 말도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어느새 문제를 악화시키는 '종양'이 되었음을 살펴볼 일이다.

진중권씨는 "가슴만 뜨거운 '주관적' 애국자들은 이쯤에서 자기들이 '객관적'으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봤으면 합니다. 애국질,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네요"라고 일갈하고 있지만, 자신의 글은 '주관적'이 아닌지 묻고 싶다. 지금 'PD 수첩'의 비윤리적 취재와 무리한 사실 확인이 밝혀지는 시점에서, 이는 참으로 무례한 훈계이다.


소위 '조·중·동' 같은 수구언론들의 '곡필'은 나라를 죽인다면, 작금의 'PD 수첩' 같은 설익은 '직필'은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겸손히 되새겨 주기를 바란다. 진보적이라는 것이 정치적 분야에서 그 도덕성의 카리스마적 근본으로 통용된다 해도 어느새 모든 분야까지 그런 자세로 임하려는 것은 우쭐대려는 못된 행태 그 자체다. 이는 상대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자세임으로 좋지 않을 뿐더러 윤리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윤리'는 무슨 엘리트가 만드는 창조물이 아니다. 일반 시민사회의 공동의식으로 행동규범이 됨으로써 굳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제에 '생명과학윤리'에 대한 철학계의 공동인식 도출을 위한 분발을 촉구하며, 그 결과를 우리는 기다리면서도 잃지 말아야 할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과는 달리 줄기세포연구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한 그 과정에 대한 윤리적 접근 역시 일부 인사들만의 주관적 규범으로 훈계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세계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한 고뇌를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윤리는 절대적일 수 없다. 그리고 법으로 그 모든 윤리적 규범을 담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 과학연구가 중요하다면 해당 과학자가 자기의 연구 분야에 헌신하도록 주위에서 감싸 주면서 비판해야지, 동의된 적이 없는 '괴기스러운 윤리'를 들먹이며 무슨 종교집단처럼 린치하려는 훈수는 걷어치우기 바란다.

이제 MBC가 공식 사과했다. 'PD수첩'의 보도에 대한 적절치 못한 자신의 주관을 설파한 일부 인사들도 겸허히 자신의 언동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고 합리화하려는 변명만 한다면 시민들로 부터 완전히 따돌림 당해 마땅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윤리'가 무엇인지 먼저 공부하고, '과학윤리'를 논하고, '줄기세포'를 논하는 성숙한 토론을 기대한다. 프랑스라면 아마 이 논란은 벌써 '윤리' 논쟁으로 지금 뜨거워져 있을 것이다. 강호의 선생들이 나서서 설익은 언변들을 아우르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윤리'가 무엇인지 먼저 공부하고, '과학윤리'를 논하고, '줄기세포'를 논하는 성숙한 토론을 기대한다. 프랑스라면 아마 이 논란은 벌써 '윤리' 논쟁으로 지금 뜨거워져 있을 것이다. 강호의 선생들이 나서서 설익은 언변들을 아우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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