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는 오늘 당신이 그립습니다!

농민들의 죽음을 생각하며 대통령께 드립니다

등록 2005.11.19 12:15수정 2005.11.1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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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반대! 쌀개방 반대!'를 외치던
13년 전 차갑고도 매섭던 서울역에서
어쩌면 나는 당신을 보았을지 모릅니다

'WTO 반대! 쌀수입 반대!'를 외치던
10년 전 매섭고도 시리던 종로거리에서
어쩌면 나는 당신의 손을 맞잡았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나는 오늘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과 그 춥고도 길었던 싸움의 장에서
따뜻한 국밥을 나누던 투박한 웃음이 그립습니다

거칠고 투박해 감추기만 하던 손
나는 오늘 당신의 손길이 그립습니다
당신과 그 외롭고 지루했던 싸움의 장에서
시린 소주 한 잔 나누던 거친 손이 그립습니다

나는 오늘 나락을 보았습니다
군청 면사무소 농협 앞에 버려지듯 쌓여진
농민들의 절규를 보았습니다
이 나라로부터 받는 농민들의 목값을 보았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락 비싸게 팔아 먹으려고 싸움질만 한다는
어짜피 개방될 거 싸운들 무슨 수가 나냐는
억울허게 왜 죽냐고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대통령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책도 없는 이 나라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로 국회로 올라오는 농민들의 마음이
나락 더 팔기 위한 농민들의 잇속으로 믿으십니까?


화려한 불꽃잔치가 열리던 부산 APEC
강 건너에는 물대포에 전쟁터가 따로 없고
대통령이 세계 정상들의 손을 맞잡을 때
이미 많은 농민들이 목숨을 놓았습니다

대통령님! 당신의 밤은 편안하십니까?
나는 이렇게 목숨을 놓은 농민들을 그리워하는데
당신의 잠자리는 편안하십니까?
나는 이렇게 더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기를 바라는데


어떤 나라가
협상이 잘못되었다 국회 청문회까지 한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어떤 사람이 10년 넘게 대책도 세우지 못한
무능한 정부의 말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제발 제 자리로 돌아오십시요!
아지매 아재같은 농민들의 투박한 손을 잡고
이 차가운 겨울날 따뜻한 국밥에
시린 소주 한 잔 나누어 드십시요!

맹수보다 무서운 것이 학정이고
하늘보다 무서운 것이 민의라는 것을
누구보다 대통령님께서 잘 알지 않으십니까?
지금이라도 농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절망어린 농민들의 가슴에 희망을 주는 대통령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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