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지기의 외롭고 험난한 고행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이현정
불과 몇 초 흘렀을까. 시청 공보실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름모를 공무원이 찾아왔다. "제발 여기서 끝내줬으면 한다"는 말을 전한다.
그 공무원의 말 속에는 모두가 흥겨워야할 축제에 장승십자가 행렬은 도무지 어울리지도 않으며, 불청객이라는 생각이 짙게 배어나왔다.
하지만 공무원의 우려와는 달리 유원지를 찾은 사람들에게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장승십자가 행진은 신기한 볼거리인 데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의 한 요소일 뿐이었다. 저마다 손에 든 휴대전화 카메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즐기고 있었다.
시민들의 반응 역시 '대외적으로 이 퍼포먼스의 의미를 더욱 많이 알렸으면 좋겠다', '이제껏 모르고 넘겨 왔던 전통의 가치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되었다' 등 갖가지였다.
민예총 안양지부 퍼포먼스 기획팀 역시 대단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시민들이 안양의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면 그 뿐이며,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충분히 흡족하다"는 것이다.
인공폭포수에 장승을 넘겨주고 이번 퍼포먼스를 마무리한 장승지기 김영부 사무국장은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며 아꼈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는 안양 공공예술프로젝트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50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준비된 축제가 부실한 준비와 홍보 부족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축제는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설치미술은 설치 중이고, 건물은 채 지어지지 않은 공사장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행사는 그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게 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는 안양유원지의 제 모습은 어떤 것일까.
"1000년 넘은 불교문화의 중심지이자 역사성이 있는 유원지의 전통적인 가치를 살려야 합니다. 오래된 문화유산들을 그냥 그 자체로 보존하고 지켜야 할 것이지, 콘크리트와 철재구조물로 대치할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새로 지어진 철재 콘크리트 건물이나 서양 문물들이 아니죠. 이미 안양유원지는 많은 것들이 파괴되어졌습니다. 그 파괴된 현장을 안양시는 시민 대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구조물로 뒤덮고 있습니다. 이러한 파괴와 뒤엎음은 더 이상 없어야 하겠습니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었고 장승지기는 장승을 남겨둔 채 자리를 비운다.
이내 인공폭포광장에 있는 시민들은 폭포를 보며 그들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떨어지는 폭포수 속에 홀로 서있는 장승의 모습은 마치 장승지기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서둘러 어둠을 헤집고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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