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노동자 도시에서 진 까닭은

[분석] 공약·기획없이 기존 조직표에만 기댄 것이 패인

등록 2005.10.27 01:01수정 2005.10.27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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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은 1년 6개월 전 받았던 표도 지키지 못했다. 17대 총선 때 민주노동당은 조승수 후보를 내세워 2만7212표를 얻었지만, 10·26 재선거에서 정갑득 후보는 2만2835표(45.5%)를 얻는데 그쳤다.

반면,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는 5000여표를 더 얻었고(2만4628표, 49.1%), 한나라당은 1년 반만에 빼앗겼던 금배지를 다시 거머쥐었다. 또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이수동 후보 1만243표)보다 훨씬 못한 성적(박재택 후보 2411표 5.4%)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왜 졌나.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우선 '조승수 효과'를 살리지 못했다는 게 첫번째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9월 대법원 판결 직후 여론조사 때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보다 훨씬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동정여론이 있었다.

그런데 선거가 시작되면서 한나라당 후보가 앞서나갔고, 선거 막판 따라붙기는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선거 중반 조승수 전 의원이 현대차 앞에서 이른바 '석고대죄'를 하면서 노동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미풍에 그쳤다는 분석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조승수 전 의원의 부인을 후보로 내세웠더라면 동정여론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지역 공약·미디어 선거기획 없어... 민주노총 비리도 악재

민주노동당은 이번 재선거에서 지역과 관련해 특별한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지역 관련 공약이 특별히 없었으며, 한나라당에 대한 공격도 기존 것에 대한 울궈먹기 정도였다. 고작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정도였고,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서민 정당'을 알리는 수준에 그쳤다.

또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한 기존 조직에만 기대 '미디어선거답다'고 할 정도의 특별한 기획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기존 조직표에 대해 낙관했다.


울산 북구의 최대 노동자 조직인 현대차노조와 현대차비정규직노조가 정갑득 후보를 지지했지만, 이를 구체적인 표로 만드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들 두 노조의 간부 중에 민주노동당 당원이 얼마 되지 않았으며, 특히 현대차노조의 경우 11월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전체 조직가동이 힘들었던 측면도 있었다.

고영호 울산리서치연구소 소장은 "민주노동당은 지역과 연관한 이슈를 만들지 못했고, 조승수 전 의원이 갖고 있던 중간 성향의 지역표를 정갑득 후보가 확보하지 못했다"고 풀이했다.

또 그는 "조직표에 낙관했던 측면이 있고, 미디어 중심의 기획이 부족했던 것 같다"면서 "'제2의 조승수'를 기대한다고 했지만, 조 전 의원이 갖고 있던 이미지를 흡수하는 데 실패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울산의 한 노동자는 "선거 중반 한 신문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22%나 격차가 벌어졌다는 여론조사 보도가 나오면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해도 안 되겠구나'하는 분위기가 돌았고, 무엇보다 민주노총 간부의 비리문제도 한 몫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착실한 준비에 '박근혜 효과'까지

반면, 윤두환 한나라당 후보는 1년 6개월 동안 나름대로 착실한 준비를 해온 데다가 박근혜 대표의 영향 등이 겹쳐 승리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울산에서도 '박근혜 영향력'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또 박재택 열린우리당 후보는 10%까지 올랐던 정당 지지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득표를 했다. 자기당 표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울산 북구 주민들은 '자동차 특구'나 '국립대 유치' 등 지역 현안에 대해서 "그래도 의정 활동 경험이 있는 후보가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진보정치 실현'은 실패했지만, 울산 북구에서 한나라당 반대세력을 50% 이상(열린우리당 득표 포함) 확보했다는 것은 이번 선거의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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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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