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축제의 뒤편에 가린 고난의 장승 행진

안양시민축제가 열린 7일 만안구서 펼쳐진 제5차 고행의 퍼포먼스

등록 2005.10.10 19:31수정 2005.10.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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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7일 금요일 안양 동안구의 대표적인 공원이며 안양의 상징물이 되어 버린 평촌 중앙공원에서는 유명한 연예인들의 화려한 공연이 펼쳐졌다. 이 날의 공식행사명은 '안양시민축제'. 하지만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안양시 동안구 평촌 신도시 주민들만의 축제'다.

이 날의 축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안양의 또 다른 반쪽 만안구. 안양의 옛 도심이었지만 쇠락해버린 만안구 중앙성당 앞에서는 만안구의 소외와 차별에 반대하는 고난의 장승 십자가 퍼포먼스가 다시 시작됐다. 벌써 5번째다.

만안구 문화의 거리 추진위원회 김영부 집행위원장(안양민예총 사무국장)의 이번 고행은 예전과 달랐다. 그저 허름한 옷차림에 장승 십자가 행진을 벌였던 예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다소 연출의 묘(?)를 살렸다.

팔목과 양발에 붕대를 감고 핏빛 물감을 흩뿌렸다. 웃옷 곳곳에도 핏빛 물감을 뿌렸다. 혹독한 고난과 강렬한 저항을 의미하는 일종의 상징이다. 화려한 안양시민축제와 아무 상관없는 소외지역 만안구 시민들의'상처받은 절규'를 표현한 것이다.

오후 5시. 안양 중앙성당 앞에는 김 위원장과 중앙성당 사회부 이금란 회장, 여성협의회 김정매 차장을 비롯한 여성협의회 회원 15여명이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모였다.

이 날의 5번째 고행의 길은 안양 중앙 성당을 출발하여 안양1번가 조흥은행 → 안양 1번가 중앙 롯데리아 → 남부정육점 → 남부시장 → 우리은행 안양중앙지점 → 2001 아울렛 → 전진상 복지관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종일 내리던 비가 잦아들자 퍼포먼스에 참가한 20여명의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지난번 4차 고행에서 빗속의 십자가 행진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분장 때문에 고행은 예전보다 훨씬 늦은 오후 5시 40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벌써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안양 1번가로 향하는 장승은 하루 종일 머금은 비 때문에 이만저만 무거운 게 아니었다. 그 무게만 150kg을 육박한다.

안양1번가 중앙 롯데리아 앞. 힘겨워하는 김영부 위원장의 주위에서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안양1번가 중앙 롯데리아 앞. 힘겨워하는 김영부 위원장의 주위에서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이현정
분장을 한 탓인지 사람들의 시선은 피 묻은 발에 머물렀고, 놀라는 시민들과 계속 뒤따라오는 청소년들이 예전보다 3배는 많아졌다.

오후 6시30분이 되어서야 중간기점인 1번가 지하차도공사장에 도착하였다. 이 곳은 안양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철로탓에 단절된 동서지역을 연결하기 위해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하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다.


장승을 세우고 막걸리 한 잔 따르며 김영부 위원장은 장승 앞에서 기원을 한다. 미리 나와 있던 구시장 동서연결 지하차도 반대 대책위원회 박원용씨는 김 위원장을 만나자 "지하차도 공사는 안양1번가와 남부시장을 절단하는 것"이라며 "단지 차량들의 원활한 교통을 위해 차도를 늘리고 인도를 줄이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성토했다.

이에 김영부 위원장은 "역사와 전통이 숨쉬고 안양지역의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문화가 깃들어 있는 이곳에 지하차도를 건설한다는 것은 안양시의 무원칙하고 철학 없는 행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껏 마음을 다 해 장승십자가를 바라보며 기원을 한다. 이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장승을 맨 그는 남부시장을 지나 마침내 전진상 복지관에 이르러 마무리를 짓는다.


특수 분장의 효과인지 놀라는 사람,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행진에 동참한 사람들은 퍼포먼스의 취지 등을 설명하기에 바쁘다.

장승지기 김영부 위원장은 이날따라 몸이 더 힘들다고 한다. 어느 때보다 코스가 길고 내리는 가을비로 잔뜩 물을 먹은 장승의 무게가 한층 더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안양 남부시장 상인들이 장승십자가를 가리키며 서로 한마디씩 하고 있다.
안양 남부시장 상인들이 장승십자가를 가리키며 서로 한마디씩 하고 있다.이현정
한발 한발 옮기기도 버거울 만쿰 온몸을 짓누르는 장승십자가를 메고 행진을 벌이고 있는 그 순간 안양시의 다른 한 쪽에서는 화려한 연예인들의 춤과 노래판 그리고 현란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안양이라는 같은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극도로 다른 상황, 그로 인한 외로움과 소외감은 김 위원장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제까지 고행을 계속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김 위원장의 대답은 간단하다.

"만안구 벽산로가 문화의 거리로 지정되고, 만안구에 대한 차별이 없어질 때까지"라는 것. 고행을 마치고 돌아서는 그의 어깨 위에는 장승십자가보다 몇 배나 더 무거운 만안구 시민들의 염원이 다시 얹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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