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빗줄기와 함께 펼쳐진 장승십자가길 10리

등록 2005.10.05 09:58수정 2005.10.0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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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4번째 고행 중 잠시 쉬고 있는 김영부 위원장
빗속의 4번째 고행 중 잠시 쉬고 있는 김영부 위원장이현정
평촌 신도시 개발에 따라 상대적으로 소외당하고 차별받고 있는 '옛 안양의 중심가 만안구를 살리자'는 네 번째 장승 십자가 고행이 지난 9월30일 금요일 오후 5시에도 어김없이 벌어졌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과연 '장승 십자가 고행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떤 조건에서도 강행 한다"는 당초 방침은 어김없이 지켜졌다.


오후 5시가 되자 천주교 중앙성당 정영식 주임신부는 걱정이 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많은 빗속에 고행을 벌인다는 것도 무리지만, 행여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느냐?"는 것이 정 신부의 걱정이다.

하지만 이날도 '만안구 문화의 거리추진위원회' 김영부 집행위원장(민예총 안양군포의왕지부 사무국장)은 약속장소에 어김없이 나타났다. 지난 1,2,3차 고행과는 다르게 초췌한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몸이 아픈지 왼쪽 발목과 무릎, 오른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다. 이어 중앙성당 사회부 회장인 이금란 회장이 도착했다.

빗속 4차 고행을 만류하는 정영식 신부와 의지를 보이고 있는 김영부 위원장
빗속 4차 고행을 만류하는 정영식 신부와 의지를 보이고 있는 김영부 위원장이현정
5분 쯤 지나자 정 신부의 만류 속에서도 김 위원장은 어느 때보다 힘차게 장승을 짊어진다. 이 날 김 위원장이 짊어진 장승은 오랜 시간 내린 빗물을 잔뜩 머금어 무게만도 족히 150kg이 넘어 보였다.

이날의 장승 행렬은 천주교 중앙 성당에서 출발하여 2001 아울렛→ 우리은행 중앙지점→ 남부시장 입구→ 안양 1번가 삼원프라자 호텔→ 농협 안양1번가 점→ 안양1번가 국민은행→ 조흥은행→ 외환은행→ 전진상 복지관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중앙성당 앞에서 출발한 지 채 5분이 되지 않아서 김영부 위원장은 숨을 가쁘게 쉰다. 어느 때보다 훨씬 무거워진 장승의 무게에 몸이 휘청거리기를 서너 번. 그도 비 때문에 장승이 이렇게 무거워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2001 아울렛에서 잠깐 멈추고 몸을 추스른 그는 몸의 균형을 다시금 바로 잡는다.

만안구 문화의 거리 지정 촉구를 위해 만들어진 장승. 비를 맞아 그 무게가 150kg은 됨직하다.
만안구 문화의 거리 지정 촉구를 위해 만들어진 장승. 비를 맞아 그 무게가 150kg은 됨직하다.이현정
남부시장 앞에 다다랐을 때 계속 뒤를 따랐던 이금란 회장 (중앙 성당 사회부 회장)이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병나겠어요" 하며 김영부 집행위원장에게 짧게 끝낼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뜻을 굽히지 않고 여느 때와 똑같은 10리길의 코스를 택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지기만 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우산을 헤치고 거대한 장승을 끌어가는 일은 평소보다 두 배는 힘이 들어 보였다. 한 블록 두 블록 지나가기가 인생의 한 고비 두 고비 넘기듯 버거워 보였다.

온몸은 이미 빗물에 젖은 지 오래. 몸은 계속 무거워진다. 100m를 채 못 가 쉬기를 여러 차례. 다시 힘을 내어 걸어보길 네, 다섯 번. 이번 고행은 최악이다. 중간 중간에 치르던 의식이나 막걸리 한 잔도 없이 4차 고행은 말없이 이어져 어느덧 1시간 40여분이 지났다. 오후 6시40분이 되어서야 빗속의 고행을 마치고 전진상복지관에 이른다.

이현정
매주 돌아오는 금요일 저녁마다 그토록 무거운 장승십자가를 짊어지고 고난의 행진을 벌이길 어느덧 한 달.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무거워지지만 의식은 더욱 선명해진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말이다.


"저의 고난에 찬 장승십자가 행진은 만안구의 벽산로가 문화의 거리로 지정되고, 만안구에 대한 안양시의 차별이 해소되지 않은 한 결단코 멈출 수 없습니다."

고통의 크기만큼 의지는 비례하는 것일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뱉는 김 위원장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는 강렬한 투지가 물씬 배어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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