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진사댁경사> 그 후 이야기, MBC <비밀남녀>

등록 2005.09.28 16:01수정 2005.09.2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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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질서는 항상 동일한 모습으로 재생산되는 것일까. MBC에서 방영되는 <비밀남녀>를 보면서 과거 보았던 <맹진사댁경사>가 연상되었다. 1960년대 초반 영화로 제작되었다가 희곡으로 각색돼 빈번하게 무대화되었던 <맹진사댁경사>는 2005년 방영되는 <비밀남녀>와 시․공간의 차(差)가 있지만 역할 바꾸기를 통해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대신 나가줘!

‘역할 바꾸기’는 단순히 극의 흥미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요 플롯이다. <맹진사댁경사>에서 갑분은 신랑이 불구를 가졌다는 소문을 듣고 결혼을 포기한다. 입분을 대신 결혼식장에 보낸 후 자신은 멀리 떠난다. 입분은 첫날 밤 미언에게 자신이 갑분의 종이라는 사실을 밝히지만 미언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절름발이’ 남자에게 시집 온 입분의 고운 마음씨에 감탄했다며 사랑으로 감싼다.

한편 <비밀남녀>의 정아미도 선 시장에서 인기 있는 신부감이다. 그러나 이러한 만남에 질린 정아미는 서영지를 선 자리에 대신 내보낸다. 서영지는 대리 운전을 하다가 정아미를 알게 된다. 이후 정아미는 서영지를 도우미로 채용한다. 서영지는 정아미에게 작업 공간과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신 요리나 청소와 같은 일을 한다. 서영지는 선을 보러온 남자 김준우의 준수함에 마음에 끌리지만 그를 멀리한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점점 가까워진다. 다른 자리에서 김준우를 만난 정아미마저도 그에게 끌리게 되면서 이들은 묘한 관계가 된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맹진사댁경사>에서 미언은 맹진사댁을 시험 한다.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한 작가의 의도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중매결혼이 일반적인 결혼 풍습이었던 당대에 사랑 혹은 심성을 파악하기 위해 신부 집안을 시험한다는 사실은 비난받아야 하지 않을까. 남성이 결혼의 주체가 돼 심성고운 여성을 간택한다는 <맹진사댁경사>는 철저히 신부 집안을 의심한다.

<비밀남녀>에서 결혼의 주체는 결혼 당사자의 성품보다 프로필이다. 프로필과 프로필의 만남이 이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최근의 세태를 풍자한다. 그러나 <맹진사댁경사>의 미언처럼 상대를 시험하지는 않는다. 정아미는 순전히 자신의 결정으로 이상형의 남자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만족스럽지만 씁쓸한, 씁쓸하지만 그럴듯한

입분은 자신이 상전아씨를 대신한 종임을 고백한다. 영지도 곧 사실이 밝힌다. <맹진사댁경사>에서는 이를 개의치 않고 자신을 사랑한 입분을 받아들이지만 <비밀남녀>에서는 좀더 사실적으로 고민하는 준우의 모습이 조명된다. 여러 차이를 무시한 채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맹진사댁경사>에 비해 <비밀남녀>는 좀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래서 준우는 자신을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맹진사댁경사>에서 입분과 미언의 결혼은 다분히 환타지적인 요소이다. 사실적으로 접근할 때 양반과 종의 혼사가 가능할까. 뿐만 아니라 미언 부모의 반응은 어떠할 것인가. 이러한 갈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작품이 <비밀남녀>이다. <비밀남녀>는 사랑이 결혼으로 완성되는 과정의 갈등이 깊이 있게 제시된다. 이를 통해 현실성을 획득한다. 부유한 김준우와 가난한 서영지의 연애는 각자의 가족으로 인해 난관에 처한다. 사랑을 결혼으로 연결시켜야 할 것인지, 결혼을 사랑과 별개로 인식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볼 때, <비밀남녀>는 <맹진사댁경사>의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갑돌과 갑분이 사랑한다면?

조건만 보고 결혼을 결심하던 이기적인 갑분은 현대화되면서 능력 있고 배려 깊은 여성 정아미로 변화되었다. 상전의 명령에 복종하는 순종적인 입분은 가진 것은 없지만 자기주장이 분명한 여성 서영지로 진화하였다. 사랑이 결혼의 전제 조건이라고 믿는 미언은 사랑과 결혼사이에서 방황하는 김준우로 그려진다.


입분을 놓치고 절규하는 갑돌은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 욕망을 실천하는 도경으로 파격적으로 변모되었다. 좌절에 빠진 갑분과 갑돌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맹진사댁경사>에서는 사랑하는 입분을 일순간에 빼앗긴 갑돌의 좌절은 주목받지 못한다. 이와 반대로 <비밀남녀>에서 도경은 사귀자는 영지의 제안을 거절한 후 능력 있는 여성 아미에게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솔직함이 무기인 도경의 삶은 과장되지 않은 코믹릴리프를 불러온다.

이처럼 <비밀남녀>는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인 <맹진사댁경사>와 유사하다. 하지만 단순한 모방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비밀남녀>는 인물들의 성격을 현대적으로 변형되었는데, 이를 통해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는 과거가 아니라 현대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대를 조화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새로운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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