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기업가들에게 권하고 싶은 고전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고

등록 2005.09.27 11:26수정 2005.09.2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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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 ⓒ 세계

최근 최고 집권자의 입에서 ‘권력이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고백이 나올 정도로 우리는 강한 자본의 지배하에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에 대한 시민사회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이미 몇몇 거대 자본은 사회의 부패의 근원으로 지목되었고, 그들에 대해 사법 처벌을 요구할만한 혐의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부패의 근원은 아닐지라도 부패의 온상이나 방관자로 인식되어 사회의 비난을 받기는 교회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부패의 이중고를 짊어지고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자본과 교회가 원래 부패와 타락에서 동반 출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 했으면 사람들이 수 백 년 동안 자본주의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을까?

그 해답을 고전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책을 소개받은 이후로 제목은 마르고 닳도록 들어왔다. 차일피일 미루면서 그간 제대로 일독을 못해오다가 책장에서 10여 년 만에 꺼내 들었다.

종교개혁의 결과

베버에 따르면, 종교개혁은 인간에 대한 교회의 지배를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였으며, 종교개혁의 결과 나타난 새로운 형식은 가정생활과 공적인 생활 전반에 걸쳐 엄격한 규율을 요구해왔다. 그런데 저자는 그 와중에 독특한 현상들을 발견했다.

우선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서구(기독교 문화권)에서 합리주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으며, 종교개혁의 결과 실업고등학교, 실습학교, 고등공민학교 등을 수료하는 프로테스턴트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 프로테스탄트는 어떠한 지위에 있든지 경제적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가톨릭 교도는 그런 경향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바탕으로 프로테스탄트의 정신과 근대 자본주의 문화 사이에 혹시 존재할지도 모르는 내면적 친화관계를 파악하려 하였다.

자본주의 정신


저자는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을 '벤자민 프랭클린'의 사상에서 찾고 있었다. 프랭클린의 사고에 따르면 영리는 인생의 목적이지 결코 수단이 아니다. 영리추구는 자본주의의 바탕이 되며 합법적으로 획득한 화폐는 근대경제조직 중에서 직업상의 유능성의 결과이자 표징이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금전욕과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다. 오히려 유사이래로 본능적으로 추구되었던 금전욕을 경계하고, 개인이 자신의 직업 활동을 의무로 의식하는 도덕관념이 근대자본주의 정신의 바탕이란 것이다.

자본주의 정신은 근대 이전에 유유자적하던 상공인들에게 엄격한 규율과 금욕을 요구했다. 그들은 엄청난 재산이 모여도 그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고 절제하고 남는 재산을 다시 사업에 재투자하였다.

칼뱅 이전의 기독교적 직업관

예수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속에서는 지극히 현세부정적인 지향을 찾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윤추구를 의무로 규정한 근대 직업관을 예수의 인격과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사도시대에는 예수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세계관의 지배적 영향으로 인해 직업과 이윤 추구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잠깐 동안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며 이웃과 부를 나누는 소극적 영리 활동만이 인정되고 있었다.

루터는 신이 각 사람의 위치를 부여한 역사적인 객관적 질서가 곧 신의 의지의 발현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각 사람은 현재 주어진 직업과 신분을 철저히 준수해야 하며 지상에서 주어진 생활상의 지위에 넘어서는 준비나 노력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칼뱅주의

칼뱅주의는 16, 17세기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에서 대규모 정치적·문화적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신앙이며, 그 교리의 핵심이 ‘구제예정설(救濟豫定說)’이다. 칼뱅주의를 대표할 만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1674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일부를 인용해 보았다.

‘제3장 제3항 : 신은 그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신의 결단에 의해 어떤 사람들을 …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하시고, 다른 사람들을 영원한 죽음으로 예정하셨다.’

칼뱅주의는 그것을 믿는 신도들에게 깊은 고립화를 안겨줬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현세는 신의 영광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선택된’ 기독교인들은 현세에서 최선을 다해 신의 계명을 수행하여 오로지 신의 영광을 증대시키는 일에만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칼뱅파가 현세에서 행하는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활동’에 직업 활동이 비중 있게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면 칼뱅주의는 개인의 선택 여부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어떻게 대했을까? 우선, 자신을 무조건 선택된 자로 여기고 일체의 의심을 가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자기 확신의 결여는 신앙 부족 때문에 생기고, 신앙 부족은 은혜의 부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는 직업노동은 자기 확신을 위한 좋은 방법이며, 직업노동에 의해서만 종교상의 유혹이 사라지고 은혜의 확실성이 주어진다고 주장했다.

금욕적 프로탄티즘의 경제관

금욕적 프로탄티즘의 직업관 및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영국 퓨리탄의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그 대표적인 신도 한 사람인 리차드 박스터(Richard Baxter,1615-91)의 저서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다.

박스터는 칼뱅에서 훨씬 더 지상의 재화에 대한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재산을 배척하는 이유는 그것이 무위도식(無爲徒食)의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영원한 휴식은 내세에나 존재하는 것인데, 인간을 나태와 향락으로 이끄는 것은 그 자체가 불경스러운 것이다. 그들에게 노동의욕의 결여는 은혜의 결여를 나타내기에 부유한 자들일지라도 노동하지 않고서는 먹어서는 안된다.

퓨리탄의 해석 중 특히 주목을 끄는 대목은 직업의 전문화는 숙련을 가능케 하므로, 생산의 양적·질적 개선을 가져오며 따라서 공공선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또, 그들은 경제의 수익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신이 신도 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었음에도 그가 거절한다면 이는 신의 관리인이 되어 그의 선물을 받아드리는 것을 거부한 것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된다.

금욕적 포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에 끼친 영향

퓨리탄들이 직업의 금욕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전문화된 근대적 분업의 윤리적 기초를 제공했고, 이윤획득의 섭리적 해석은 실업가의 활동을 정당화했다. 또, 그들이 세속적 직업노동을 종교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입장은 자본주의 정신을 넓혀가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으며 소비의 제한은 자본의 축적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들에 의해 ‘가능한 많이 취득하고, 가능한 많이 절약하는 자’들이 은혜를 증대시켜 천국에 보배를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이 타인에게 베풀어야한다’는 충고는 계속되고 있기에 독특한 부르조아 경제윤리가 출현하게 되었다.

부르조아 기업가는 신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서서 그의 축복을 받고 있다고 느끼며, 그가 형식적인 올바름의 틀을 지키는 한, 그리고 그의 도덕생활을 깨끗이 하며 그의 재산이 온전하게 사용되는 한 금전적 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고 또 그래야만 하며 또한 그게 그렇게 해야 할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하여

저자 : 막스 베버(Max Weber)

1864년 독일 엘프르트시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법률학을 공부하는 한편,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철학 수업에 몰두했다. 1920년, 56세라는 나이로 생애를 마감한 그는 풍부한 세계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철학 등을 포괄적으로 발전시킨 사회과학자였다. 특히 사회과학 방법론과 근대서구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그가 남긴 발자취는 현대사회과학에 지대한 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번역 : 박종선

1955년 양평 출생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수학

출판사 : 도서출판 세계

출판일 : 1987년 8월 25일

당시 가격 : 3,500원
아울러, 종교적 금욕의 힘은 브르조아에게 건전하고 양심적이고 아주 근면한 노동자를 제공하였다. 그들이야말로 신에 의해 전도된 생활목적으로서 그들의 일에 열심히 매달렸던 것이다.

지금도 교회에 가면 '바르게 벌어서 남을 열심히 섬기는 일이 천국의 창고에 보물을 쌓는 일'이라 가르치고 있으니 금욕적 기독교의 경제윤리는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는 경제관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교인들 사이에 금욕적 경제원리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현대 (독점)자본이 야수의 얼굴을 띠고 탐욕스런 눈으로 먹이를 찾고 있는 현상은, 현대 자본이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이탈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윤추구를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제국주의 군수자본과, 기업윤리는 뒤로한 채 정경유착과 부동산 투기에 열정을 쏟고 있는 국내 재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자본은 자본 스스로 기본에 충실해야 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제주기독시민연대>의 간사이며 <제주예안교회>의 평신도입니다. 기자에게 지급되는 원고료는 전액 <제주외국인근로자센터> <더불어사는사회> <유니세프>를 후원하는데 사용됩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제주기독시민연대>의 간사이며 <제주예안교회>의 평신도입니다. 기자에게 지급되는 원고료는 전액 <제주외국인근로자센터> <더불어사는사회> <유니세프>를 후원하는데 사용됩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인문사회과학총서 1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
문예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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