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우 의사 앞에 선 다짐

안양 만안구 문화의 거리 지정 촉구, 장승십자가 퍼포먼스2

등록 2005.09.23 16:03수정 2005.09.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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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오후 5시 장승 십자가를 맨 두 번째 고행이 시작되었다. 십자가를 짊어진 만안구 문화의 거리 추진위원회 김영부 집행위원장은 안양이란 도시의 중심지이자 전통의 숨결이 깃든 벽산로를 '문화의 거리'로 만들기 위해 지난 1년 여 고초를 겪은 장본인이다.

출발에 앞서 십자가 밑에 깔린 멍석에 촛불을 밝히고 술을 따라 절을 올리는 것으로 예를 드린다. 소문을 듣고 온 손님들이 많아졌다.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수십 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냉천동 대책위원회 어르신 10여 분이 격려차 참여하셨다.

김영부 집행위원장은 안양의 중심지인 만안구의 전통과 역사의 흔적들이 파괴된 사례들을 전한다. 그가 고행에 나서자 어르신들도 동행한다.


벽산로를 따라 중앙시장에서 CGV를 지나가는 길. 100kg이 넘는 장승십자가의 무게는 그의 얼굴을 땀으로 적시고 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다. 그러는 동안에 시민들의 시선은 온통 그에게 쏠린다.

하지만 그는 시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 애써 입을 열지 않는다. 횡단보도 앞에서 잠시 가쁘게 몰아쉰 숨을 돌린다. 횡단보도를 지나 1번가를 향하자 문제가 생긴다. 인도가 좁아 십자가를 끌고 가기가 마땅치 않다. 할 수 없이 차도의 한편을 따라 간다.

안양 민예총의 김영부 사무국장이 장승을 짊어지고 있다.
안양 민예총의 김영부 사무국장이 장승을 짊어지고 있다.이현정

안양역에 있는 원태우 의사 앞에서 기원하고 있는 모습
안양역에 있는 원태우 의사 앞에서 기원하고 있는 모습이현정
그렇게 벽산로에서 출발한 지 30여 분이 지나서 도착한 곳은 안양역이다. 역사 입구에 안양의 대표적인 항일투사인 원태우 의사의 부조상이 있다. 잠시 십자가를 세워 놓는다. 촛불을 밝혀 잔을 올리고 맨바닥에 넙죽 절을 드린다. 예를 마친 후 고하는 함성이 사뭇 비장하다.

"누구도 나서지 않을 때 당신은 분연히 일어나셨습니다. 배운 자들이 일본 놈의 앞잡이가 되고, 가진 자들이 자기 배에만 기름을 찌울 때, 아무런 배움도 가진 것도 없는 당신이 일어나셨습니다. 석수동 서리재에서 돌팔매질로 민족의 원수 이등박문을 통쾌하게 저격하셨습니다. 그러나 광복 60년 당신이 가신 지 55년이 흘렀으나 아직도 이 나라는 친일파들의 천국입니다. 저들은 끊임없이 국민을 기만하고 역사를 상대로 사기치며 부정과 불의를 획책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안양의 현실은 당신께 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심은 사라졌습니다. 일본 놈들이 삼천리 금수강산을 유린하고 조선민중을 짓밟았듯 지금 안양을 다스리는 점령자들은 안양의 전통을 파괴하고 폭력과 무력으로 시민을 짓밟고 있습니다. 원태우 의사시여! 부디 굽어 살피셔서 당신의 의기가 다시금 안양 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오로지 즐거움만 있는 자유로운 이상향' 安養世界의 정신이 되살아 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어느새 김영부 집행위원장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득하다. 무엇이 이토록 그의 울분을 두텁게 하였는가?


몰려드는 시민들..
몰려드는 시민들..이현정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사방에서 중고생들과 시민들이 삼삼오오 호기심에 구경을 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카메라 폰의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진다.

다시 걷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안양의 번화가인 1번가 거리이다. 젊은이들이 가득한 곳 그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한 블록을 지날 때 즈음하여 잠시 쉰다. 쉴 때는 장승을 등에 지고 있다. 그의 몸은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이렇게 1번가를 거쳐서 다시 벽산로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20분. 동행해주신 어르신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장승십자가를 제자리에 갖다놓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깊은 숨을 몰아쉰다. 그러나 그의 고행은 끝나지 않았다.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그의 고행은 이제 시작이다.

한 숨을 돌리자 그의 말문이 열렸다. 한옥 목수로서 사찰을 짓던 중 작년 6월부터 '만안구 문화의 거리운동'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의 연장은 녹슬게 되었다. 그 와중에 숱한 사연과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시민단체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하여 '인도를 반으로 줄이고 차도를 넓힌다'는 안양시의 비인간적인 벽산로 정비계획의 허점을 짚으면서 그의 장정은 시작된다. 안양시가 '재래시장 활성화와 시민 보행권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다. 그는 2003년에 전국 최초로 재래시장 활성화의 문화적 대안을 제시하며 '장터문화제'를 개최하여 벽산로를 끼고 있는 중앙시장 상인들과 친분이 돈독하다.

그는 안양시의 명분이 온전하게 살아나려면 "벽산로를 서민공동체 문화가 꽃피는 문화의 거리로 조성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벽산로를 문화의 거리로 지정해야 하는 것은 '낙후된 만안지역 26만 주민의 최소한의 문화적 숨통을 열어 달라'는 소박한 권리주장이라며 시민들과 함께 '노란손수건'을 걸어 문화의 거리에 대한 소망을 키웠다. 단편소설의 내용처럼 '사랑의 힘으로 화해하고 갈등을 극복하는 아름다운 결말'을 희망하면서 말이다.

오랜 노력 끝에 만안구 문화의 거리조성을 위해 경기도 단위 행사인 '경기민족예술제'를 유치하였다. 안양민예총 행사인 '장터문화제'도 벽산로 문화의 거리와 연결시켰다. 4일 동안 세 편의 마당극 공연을 비롯하여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의 문화공연·난장공연·사진전시와 문화체험마당을 통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흥겨운 일탈을 경험하였다.

이 모든 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총연출을 하면서 '만안구는 공간이 협소해서 안된다'는 안양시 공직자들의 닫힌 사고가 진심으로 열리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순진한 바람에 불과하였다.

안양시의 속셈은 노점상 철거에 있었다. 시민단체와 종교계·법조계 등 60명의 지도자들이 나서서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해결을 염원한다"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폭력적인 강제철거는 지역사회에 갈등과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을 주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노점상의 약속을 신뢰하고 호소에 귀 기울여 대화를 통한 평화적 타결의 선례를 만드십시오!" 촛불기도회를 통해 지극히 이성적이며 평화적인 촉구도 했다.

그럼에도 안양시는 이를 외면하고 노점상을 폭력으로 강제 철거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애초에 노점상 이전문제에 대해서 시민단체 내에서 강경한 입장이었던 그가 안양시의 계속되는 독선행정에 분노하며 노점상 편을 들어 저항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6월 만에 녹슨 연장을 가지고 장승을 깎아 십자가를 만든 것은 어쩌면 안양의 현실을 보는 것 같은 모순일지 모른다. 그는 "지금으로서 가장 큰 소망은 다시 연장을 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낙후된 문화 소외지역으로 전락한 만안지역 주민들을 위해 "안양천 대보름축제"와 "장터문화제" 등 새로운 유형의 축제를 만들어낸 축제 기획자기도 하다. 지난 여름에는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학의천, 한여름 밤의 축제"를 성황리에 개최하여 안양시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는 "안양천을 문화광장으로 만들자!"는 주장을 편다. 문화행사와 축제가 평촌중앙공원에서만 집중되고 있어 만안지역이 소외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안양시민축제를 안양천에 열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 주5일수업제 실시로 소외계층 어린이들의 문화안전망 구축을 위한 대안문화학교인 '꿈나무 어린이 문화학교' 운영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벽산로 길바닥에서 남은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며 뼈있는 한마디를 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친다.

"한가위 보름달이 어디 있는 사람들과 높은 사람들만을 위해서 뜨는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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