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세워진 인천 자유공원에서 진보단체 회원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미군강점 60년 청산 주한미군철수 국민대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이 우익단체 회원들이 던지는 달걀과 돌을 피해서 자유공원으로 들어가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빨갱이를 쳐죽이자!"
"자신 있으면 덤벼, 이 빨갱이 XX들아!"
8·15 해방이나 한국전쟁 직후에 남한에 울려 퍼졌던 구호가 아니다. 21세기를 5년이나 지나, 남북화해와 협력의 물꼬가 터진 지금에 다시 들리는 목소리다.
지난 11일 인천자유공원에서 일어난 진보단체와 보수단체의 충돌은 혼란한 해방정국 당시 좌·우익 대립의 축소판을 보는 듯 했다. 특히 일부 보수단체(극우단체라고도 볼 수 있는) 회원들이 보여준 '호전성'은 화해와 통합을 목표로 달려온 지난 60년의 시간과 공간이 부질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게 만들었다.
1945년 해방 직후 공산당을 피해 내려온 서북청년단 등 우익들은 총과 칼, 자전거 체인과 몽둥이를 들었다. 남한의 온건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은 경찰보다 이들 우익단체를 먼저 피해야 했다. 그래야만 '백색 테러'로부터 목숨이나마 부지할 수 있었다.
해방 직후, 그리고 현재의 '우익 청년단'
그 뒤로 60년이 지났다. 지난 11일 이번에는 '보수'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학생과 시민단체 회원들을 향해 계란과 돌, 빈병을 던지고 각목을 휘둘렀다. 학생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맥아더 동상 철거 운동에 돌입하자 "대한민국의 빨갱이를 소탕하겠다"고 일어섰다. 말리는 경찰을 향해서도 이들은 "대한민국 경찰이 인민경찰이냐"며 삿대질을 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폭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행사가 마칠 즈음 인천자유공원 주변을 지나던 젊은이들은 때아닌 봉변을 당해야만 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띄면 여지없이 계란을 날리며 달려들었다. "동네 사람들 지나가는데 왜 계란을 던지느냐"고 반박하면 "빨갱이 몇 놈을 잡아다가 '물고'를 내야 한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들에게 빨갱이는 곧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처럼 보였다.
욕설과 폭력으로 상대방을 먼저 제압하려는 것 뿐 아니다. 아래·위로 군복을 차려입고, 전투화를 신고 나온 이들의 모습은 사진으로 보던 해방 직후 남한의 우익 청년단과도 매우 닮았다. 지난 60년간 보수단체의 정신과 겉모습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기 마련. 보수단체 회원들의 도발 때문에 이 날 인천자유공원 앞 곳곳에서는 진보·보수단체 회원들의 말싸움,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 노인이 휘두른 지팡이에 맞아 울음을 터뜨린 여대생도 있었고, 진보단체 회원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진 보수단체 회원도 있었다.
손녀 같은 여대생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는 노인과 또래 청년에게 발길질을 퍼붓는 또 다른 청년. 그날 인천자유공원 앞 상황은 해방정국의 이념 충돌이 얼마나 격렬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