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저녁 삼성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그룹의 노동·인권탄압, 정경유착, 경제파탄 주범 책임자 처벌을 위한 촛불문화제'.허지웅
"정말 삼성을 죽이려는가!"
지난 8월 17일 서울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앞에서 촛불시위가 열리던 날, 이를 지켜보던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고위임원이 격앙된 목소리로 던진 말이다. 15만 삼성인들로서는 정말 당혹스런 날이었음에 틀림없다. 수백명의 시민들은 그날 X파일 전면 공개 및 이건희 회장 구속처벌을 촉구하는 ‘촛불 문화제’를 가졌다. 그에 앞서 전국 108개 시민사회단체는 삼성 불법 뇌물공여 사건 및 불법 도청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단체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촛불시위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가? 월드컵 승리를 위한 붉은 악마들의 집회,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을 위한 추모시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한국사회에서 촛불시위는 신성한 의미를 지닌다. 역사의 획을 가르는 큰 고비 때마다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숭고한 대의를 내걸고 시민사회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기폭제’로 승화됐다.
"그렇다면 정말 삼성이 공공의 적이란 말인가!"
삼성 구조본 고위 임원의 목소리에는 황당함과 분노가 섞여있다.
촛불시위와 삼성 구조본 임원의 분노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 삼성의 경영이 이번 X파일 사건으로 흔들리는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기업으로서의 삼성은 계속 발전해야 한다. 삼성이 우리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 이유를 잘 말해준다. 한국 전체 수출의 22%, 국세의 8~10%,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23%, 10대그룹 전체 매출의 30%, 이익의 35% 등등.
문제는 역시 삼성의 지배구조이다. 삼성이 순수 경영활동과 관련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이 얼마나 되던가? 여론의 지탄을 받는 삼성의 행위들 대부분은 황제경영과 세습경영으로 대표되는 전근대적 지배구조에서 비롯된다. 세금없는 대물림이나 폭력적인 무노조경영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에 주는 불법자금이나 검찰에 대한 ‘떡값’도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총수 1인 지배구조를 위한 일종의 ‘체제유지 비용’이다. 막강한 자본력과 인적 네트웍, 정보망을 동원해 시장경제의 법과 질서까지 자신들 입맛대로 재단하는 삼성공화국의 폐해도 ‘비민주적’ 황제경영의 확장이다.
그것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시점에 와있다. 촛불시위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는 불과 수백명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촛불시위의 시작도 항상 미약했지만, 나중에는 시대의 흐름을 바꾸었다. 삼성 앞 촛불이 언제 수만, 수십만개로 불어날지 모른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항상 화약고를 짊어지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삼성의 반응은 아직 실망스럽다. “참여연대와 민주노동당, 극소수 언론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 문제 없다.” 삼성 구조본 간부의 말에서는 안이함마저 느껴진다.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삼성을 좋게 본다는 응답이 항상 다수이다. ‘삼성공화국’ 논란이 최고점에 달했던 때에도 삼성에 대한 호감도는 50%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삼성으로서는 엄청난 자산이다. 그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초일류기업 삼성이 당연히 누려야 할 몫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삼성공화국에 대한 우려, 세금없는 대물림에 대한 비판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위기의 삼성, 해법은 지배구조 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