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국민들이 '떡값 검사' 항변을 안믿는 이유

등록 2005.08.20 14:19수정 2005.08.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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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사건의 후폭풍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것 같다. 전체 274개 중 테이프 하나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공개되었을 뿐인데도 여론의 파고가 엄청나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떡값 검사'의 실명을 개인 홈페이지에 공개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자마자 김상희 법무부 차관은 즉각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밖에도 실명이 거론된 전·현직 여섯 분도 모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잠깐 멈추어 생각해 보자. 거명된 인물들은 공개된 테이프에서 제3자로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떡값을 수령하는 순간이 테이프에 담겨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혐의자 신분일 뿐, 범죄자 신분은 아직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순식간에 거의 모든 국민들은 단지 피혐의자들인 이들 7인을 범죄자인 양 단정하고 행동했을까? 필자는 거명된 일곱 분이 (진실로 범죄사실이 없다면) 피혐의자 신분으로 형사소추과정을 거치는 중에 혐의가 벗겨지고 사회적으로도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법적으로 혐의를 벗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들이 사회적 명예를 회복하기는 힘들 것 같다. 대부분의 보통 한국국민들이라면 이 예상에 동의할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과도한 권력을 검찰조직이 독점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형사소추제도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권과 관련한 거의 모든 법적 권한뿐만 아니라, 기소독점권과 기소편의주의에 따른 기소재량권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다 재판기능도 상당 부분 담당하고 있지 않은가?

검찰의 전지전능함이 '유죄'


달리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범죄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수사에 착수하거나 혹은 하지 않을 권한 ▲사건을 기소하거나 하지 않을 권한이 오직 검사에게만 주어져 있으며 ▲소위 '검찰조서의 법적 증거능력 인정'이란 조항 때문에 피의자가 범죄사실을 '검사님'에게 자백하고 날인하면 사실상 재판결과까지 결정되고 만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70% 정도에 불과한 기소 범죄 대비 유죄 판결률이 우리 대한민국은 거의 100%에 육박하고 있다. 검사들의 법적 권한과 정치적 권력은 가히 전지전능한 신의 수준이다. 그들 앞의 피조사자들은 처분만 바라는 '고양이 앞의 쥐'일 뿐이다.


또한 이런 과도한 권력은 그동안 초임 검사의 3급 발령과 검찰조직 내 차관급 직위 공무원의 수가 50여 명에 이르는 등의 '비정상적' 특혜들로 보강되어 왔다. 검찰은 9만여 명의 직업경찰이 있는, 차관급 인사 단 1명의 경찰 조직을 거의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

지난 세월동안 입법부나 행정부는 현실에 맞게 법과 공무원 처우 등을 개정하는 작업에 지독하게 게을렀다. 그 덕택에 현재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잠재적 기소대상자'다.

촌지를 받은 적이 없는 교사나 세금을 탈루하지 않는 자영업자, '뒷돈' 한번 받은 적이 없는 공무원, 정치자금법을 위반하지 않는 정치인들은 우리 사회에 거의 없다. 혹은 그런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검사들에게 대들겠는가?

검사들은 전지전능하다. 범법 여부에 대한 확정 판결은 물론, 거의 만인의 유무죄에 대해 결정할 권한을 오로지 검사들만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정몽헌 회장을 모욕하고 (그래서 자살을 결행토록 하고), 노무현 후원회장 이기명씨에 대해 애초 정치자금지원 부분에서 범법 사실이 발견되지 않자 회사공금 횡령 혐의로 '처리'하고, 외국에 오래 살아 '순둥이'였던 송두율 교수는 수백 번 동일한 질문을 던져 마침내 '혐의사실'에 대한 조서날인을 받아내어 다음 단계(법원)로 넘겼나 보다.

검사들은 완벽한 권력의 성채를 구축하고 그 속에 머무르며, 독점 권력을 전횡·남용하였다. 국민들은 바로 그 그늘에서 민주시민의 권리인 사법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포기하거나 피눈물나는 억울함을 당해오기도 했다.

바로 이 때문에 국민들은 검찰들이 죄가 없다고 믿지 않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검찰들에게 불가능할 일이 없도록 해 준 권력독점이 이 땅의 사법정의를 짓밟았으며 서민들의 삶을 철저하게 법의 음지로 내몰았다. 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평생 법을 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별천지 사람들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과외나 주택소유를 하고 있는 검사들이 있으니, 전체 검사들은 불신집단이 되어버린다.

버려라, 그 길이 답이다

그렇다면 검사들이 현재의 이 엄청난 중압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 길과 방법을 임기 초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 주었다.

버리는 것이다. 법이 정하지 않은 권한을 내어놓는 것이다. 법이 정하였더라도 민주적 원칙에 어긋나는 권한이라면 내어놓는 것이다. 대통령이 검찰을 독립시켰던 당시 검찰들은 간섭이나 지배가 사라졌다고 좋아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동시에 검찰에 대한 보호막(?)이 걷혀버린 사건이었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검찰이 향유한 만큼 직접 감당해야 하는 시대로 넘어와 버린 것이다. 보호막이 없는 지금 검찰들은 국민들을 직접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여 검찰도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가 없지 않았다. 불행히도 검찰들이 거부했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제안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 건 말이다.

한번 가정해보자. 소추권한이 검사조직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분산되어 있다면, 그리고 분산된 각 기관들이 지금까지 (서로 견제하며) 국민의 신뢰를 받는 가운데 업무를 수행해 왔다면, 국가기관이 '혐의 검사님'들의 무죄를 판단할 때 국민들은 그것을 믿어주지 않겠나?

하지만 검찰들도 느끼고 있다시피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검찰에게 신뢰를 주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들 책임이다. 현재 제기되는 혐의들에 대해서는, 어떤 사법적 판단도 국민들로 하여금 검찰의 무죄를 믿도록 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지혜는 발휘하시길 바란다. 앞으로 개봉될 274개 테이프의 후폭풍을 겪으면서, 공명정대한 사법제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천하시라. 독재자에게 선물로 받은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할수록 꼴은 더 우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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