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꾸준한 달팽이를 닮아보세요!"

[인터뷰] 정년퇴임하는 달팽이 박사 권오길 교수

등록 2005.08.11 11:57수정 2005.08.1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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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독자들에게 1년에 책 한 권씩 쓰겠다던 약속을 지킨 권오길 교수가 새단장한 전집을 안고 있다.

독자들에게 1년에 책 한 권씩 쓰겠다던 약속을 지킨 권오길 교수가 새단장한 전집을 안고 있다. ⓒ 조성일

1994년 낯선 이름의 한 과학자가 세상 사람들의 입에 회자됐다. 사람들은 그를 온 나라를 답사열풍에 휩싸이게 했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에 빗대 '자연과학계의 유홍준'이라 불렀다.

'과학에세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며 '읽기 쉬운 과학책' <꿈꾸는 달팽이>를 쓴 권오길(65·강원대 생명공학부)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권 교수는 이 책을 시작으로 읽기 쉬운 과학책을 매년 한 권씩 내겠다는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며 어느덧 아홉 번째 책 <달과 팽이>를 냈다. 그 아홉 자식들은 새 옷을 갈아입고 전집으로 묶여 이번 달로 정년퇴임을 맞는 그에게 논문집을 대신하여 헌정된다.

권 교수의 퇴임식에 헌정되는 책들은 '맏이'인 <꿈꾸는 달팽이>를 비롯 <달과 팽이> <하늘을 나는 달팽이> <바람에 실려 온 페니실린>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 <생물의 죽살이> <생물의 애옥살이> <열목어 눈에는 열이 없다> <생물의 다살이> 등이다.

학부, 대학원 통틀어 '교수' 신분으로는 마지막이 될 교육대학원 강의를 준비하랴, 연구실 짐을 싸랴, 몹시 분주한 권오길 교수를 지난 5일 강원도 춘천에 있는 강원대에서 인터뷰했다.

정년퇴임하는 달팽이 박사

"시원섭섭합니다. 이제 생각도 자유롭게 하고, 글도 마음껏 쓰고, 여행도 다니고, 잠도 실컷 잘 생각을 하면 시원한데,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건강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학생들과 몸 부대끼는 생활을 그만둬야 하는 것이 섭섭하죠."

a 이번 달에 정년퇴임하는 권오길 교수.

이번 달에 정년퇴임하는 권오길 교수. ⓒ 조성일

괜한 감상 따윈 단칼에 날려버리겠다는 듯 권오길 교수는 시원시원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정년퇴임 소감을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칭 강원대에서 강의를 제일 잘하는 교수인데, 이제 명예교수라고 1주일에 3시간밖에 강의를 주지 않는다"고 눙을 친다.


"가르칠 때가 가장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40여년의 선생 생활을 마감하는 정년퇴임은 사실상 죽음이죠.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 봐도 세월은 가고 나이는 먹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가는 데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꽃이 필 때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아름다워야 하듯 저도 곱게 늙겠습니다."

권오길 교수가 과학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출판사를 차렸다며 찾아와 대뜸 책을 써달라고 하는 한 제자(지성사 이원중 대표) 때문이었다. 주제넘게 무슨 책을 쓰나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 보세!" 했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권 교수는 "패류도감 두 권을 내느라 똥줄이 빠지고, 그나마 성성하지 못한 눈은 점점 주인을 나무라고 있는데도 들은 체 만 체"하면서 아이들이 쓰다버린 볼펜들을 모아 원고지 1300장을 썼다.

볼펜 한 자루가 200자 원고지 106장을 메울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면서 볼펜 열세 자루를 먹고 탄생한 책이 바로 <꿈꾸는 달팽이>였다.

그래서인지 이 첫 책에 가장 애정이 많이 간다는 그에게 가장 아쉬운 책은 어떤 책이냐고 묻자 그는 "열 손가락이 서로 길고 짧지만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며 모두 소중하다고 했다. 그래도 한 권을 꼽아달라고 하자 권 교수는 안고 있던 책더미를 내려다보며 자식들이 다 듣고 있는데 어떻게 못난놈이라고 지적하느냐며 끝내 사양한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사람과 소나무'

권오길 교수는 달팽이 박사이다. 그래서 '닥터 스네일(Dr. Snail)'로 통한다. 달팽이를 연구하는 그의 전공이 '패류 분류학'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벌써 낯설고 어려워진다. 그런 그가 쉽고 재미있게 과학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a 글쓰기에 활용하기 위해 대학노트에 해놓은 메모.

글쓰기에 활용하기 위해 대학노트에 해놓은 메모. ⓒ 조성일

"사람들은 '과학'의 '과'자만 얘기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하물며 과학에 관한 글은 더더욱 '멀리해야 할' 대상이지요. 우리의 삶 모두가 과학으로 설명되어지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원숭이도 읽을 만큼 쉽게 생물학을 설명해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했죠."

그의 글발이 한 글발 한다는 것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다. 말하듯 쓰인 그의 글은 그냥 술술 읽히면서 때로는 배시시 웃음을 머금게 하고, 때로는 '바로 그거구나' 하고 맞장구를 치게 한다.

그의 글은 단순히 생물의 다양한 살이를 재미있게 설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물의 살이를 씨줄로, 인간의 삶을 날줄로 하되 자신의 경험과 해학의 물감들을 곁들여 직조된 피륙이기에 형형색색의 무늬가 들어가 있다. 조개류를 설명하다 분위기가 딱딱하다 싶으면 "아, 군침이 도는구나!"하는 표현을 집어넣고, 또 때로는 공자말씀까지도 동원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글재주가 그에게 있다. 그런 그는 자신의 글 '사람과 소나무'가 중학교 2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 실리자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스승인 '물고기 박사' 최기철 교수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최 박사의 글 '홍도 기행'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보고 무척 부러웠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국어 선생으로 착각 아닌 착각을 할 정도로 그의 글이 깔끔하고도 정갈한 것은 원래 글재주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의 남다른 공력의 덕분이다.

그는 지금껏 그 두꺼운 <이희승국어대사전>을 두 권 째 말아먹고(?) 있었고, 자신의 말글살이 노트인 '눈을 끄는 단어 및 문장 노트'를 만들어 틈틈이 좋은 말글을 메모했다가 글쓸 때 활용한다. 속담 사전 역시 좋은 글쓰기를 도와주는 빼놓을 수 없는 그의 글 친구이다.

젊을 때는 진보주의자, 지금은 보수주의자

"달팽이요?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습니다. 또 잔꾀를 부리지 않습니다. 보세요. 언제나 제 집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지 않습니까."

권오길 교수는 누구인가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일본에 유학하여 지리학을 전공하던 그의 아버지는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사망했다. 한국인 아버지가 일본군인이 되어 미군의 총에 맞아 죽었지만 원망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했다가 친척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들어간 그는 진주고, 서울사대 생물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다. 수도여고, 경기고, 서울사대부고에서 교편을 잡던 그는 1980년대 들어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르렀다.

<강원일보>에 10년 넘게 ‘생물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그는 신문과 방송, 책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2000년 강원도문화상을 비롯 2002년 간행물윤리위원회 저작상, 2003년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이번에 정년퇴임 기념 헌정 전집으로 묶인 책 이외에도 베스트셀러인 <인체기행> <달팽이> <개눈과 틀니> 등이 있다.
/ 조성일 기자
달팽이 박사의 입에서는 달팽이에 대한 찬사가 마르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은 달팽이를 '와우(蝸牛)'라고 했는데, '와'는 달팽이, '우'는 소라는 뜻으로 역시 행동이 소처럼 느릿하고 굼뜨다는 의미가 들어있다"며 권오길 교수는 "'우보호시(牛步虎視), 뚜벅뚜벅 느린 소걸음을 걸어도 눈은 형형(炯炯)히 빛나는 범을 닮아야 한다', '실패의 반은 게으름에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느리지만 꾸준한 달팽이를 닮아보라"고 권유한다.

어느덧 그의 생물학 이야기는 일본원숭이를 예로 들어가며 진보와 보수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고구마와 옥수수에 묻은 모래를 제거하고 먹는 방법(바닷물에 씻어 먹는 방법)을 터득하는 순서를 보면 새끼 암놈이 가장 빨리, 다음이 새끼 수놈, 그 다음이 어미 암놈이 받아들이고, 아비 수놈은 여전히 고고 창창 고구마는 벗겨 먹고 옥수수는 한 알 한 알 주워 먹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초보수주의자인 할아버지나 보수적인 아버지의 행동에 비해 젊은이들이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잘사는 사람들이 무조건 미웠고, 군사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머리를 기르기도 했고, 식당에서 쓰는 냅킨에 서명을 하여 시국선언을 할 만큼 한때는 진보주의자였던 자신이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보수주의자가 되었다며 헛헛한 웃음을 웃는다.

"앞물은 뒷물에 밀리고 뒷물은 다시 그 뒷물에 밀리듯이 보수와 진보는 역사 속에서 항상 공존하면서 자리바꿈을 해오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생애 최고의 날로 살아간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자 나무하던 지게를 부수기도 했다. 고등학교 성적표를 들고 형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형이 "다른 과목은 몰라도 전 학년 모두 '수'를 받았던 과목이 바로 생물이라며 생물을 전공하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당시 학비를 내지 않던 서울사대에 들어간 그는 영락없이 자신의 몸에는 생물의 피가 흐른다고 말한다.

그가 달팽이 박사가 된 것은 패류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던 대학원 시절인 197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보게 된 미국 과학잡지 에서 눈에 확 띄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잡지 한 면을 전체에 실렸는데, 달팽이 사진이었어요. 순간 '아, 저거다!'하는 탄식이 나오더군요. 그 사진의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최신호를 보여주는 권오길 교수는 비상용으로 결혼반지를 꼭 끼고, 간첩으로 오해를 받아가며 전국의 산과 바다, 들에서 생물채집하며 달팽이를 비롯한 연체동물에 관한 논문 80여 편을 써낼 정도로 이 분야의 권위자가 된다.

요즘 잘나가는 과학에세이 필자인 서울대 최재천 교수도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하는 권오길 교수는 그의 뒤를 이어 과학 대중화를 위한 글쓰기에 나서는 후학들이 나오고 있어 반갑다고 했다.

슬하에 둔 두 딸과 아들이 모두 생물을 전공하고 있다는 그는 지금까지의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학교 근처에 조그만 아파트를 하나 빌려 연구실로 쓸 계획이다.

"글쓰기란 피를 잉크로 만드는 일 같습니다. 여전히 어려워요.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많이 쓸 겁니다. 달팽이에 대해서는 쓸 만큼 썼으니 이젠 지렁이나 두더지 같은 땅 속 생물에 대해 써볼 참입니다."

담배를 참지 못해(그는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라고 했다) 가끔 한 대씩 물게 된다는 권오길 교수는 "건강하세요!"라는 말로 독자들에게 마무리 인사를 했다.

'지족최상(知足最上·만족을 알면 그 이상이 없다)'을 좌우명으로 삼는 권오길 교수. '오늘 하루를 생애 최고의 날로 살아간다'는 스승 최기철 교수의 말씀을 새기며 퇴임 이후를 준비하느라 그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고 있었다.

꿈꾸는 달팽이 - 과학 속에서 삶의 진리 깨우치는 권오길 교수의 생물학 강의

권오길 지음,
지성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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