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사수정 : 25일 오후 3시 31분]
"재벌 때리기에 편승해 1조원 챙긴 소버린"(동아일보)
"막대한 차익을 노리고 치고 빠지는 ‘투기자본’으로 판명"(서울경제신문)
수구언론들이 일제히 소버린 때리기에 나섰다. 소버린이 SK(주) 주식을 모두 팔고, 손을 떼기로 했다는 소식이 계기가 됐다. 취약한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인질 삼아 엄청난 차익을 챙겼고, 국내기업으로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막대한 비용 지불, 반기업정서 악화 등 부작용이 컸다는 것이다. 수구언론이 때리는 것은 겉으론 소버린이지만, 실제론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앞장서온 공정거래위원회와 참여연대이다.
"소버린은 한국기업의 가치가 떨어지는 주범은 잘못된 기업지배구조에 있다고 주장하며, … 공정위도 소버린과 닮은 인식을 보여 왔다 … 일부 시민단체는 … 거들었다. 소버린은 공정위와 시민단체의 뒤통수를 쳤다."(동아일보)
소버린이 SK에 대해 손을 떼겠다고 하자, 수구언론들이 입에 거품 무는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글로벌시대에 외국자본에 대한 맹목적 반감은 곤란하지만 소버린이 불과 2년 반 만에 알토란 같은 8천억원의 자본이득을 챙긴 것은 한국민이라면 누가 봐도 ‘배아픈 일’이다. 그러나 눈만 부라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원인분석과 처방이 정확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소버린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모두들 소버린 사태가 기업경영권과 기업지배구조 논란에 비싼 교훈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수구언론들이 내리는 결론은 엉뚱한 곳으로 빠진다.
“바람직한 지배구조는 시민단체나 투기자본보다 해당기업이 가장 잘 안다. 기업의 목표는 더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이며 지배구조는 이런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이다.”(동아일보)
수구언론들의 진단은 무엇보다 사실을 왜곡한다. 소버린에게 2년만에 8000억원을 벌게해준 '1등 공신'은 공정위나 참여연대가 아니다. 바로 SK 자신이다. 농반진반으로 한국 사람들은 건망증이 심하다고 하지만, 2003년 1조 5000억원의 회계부정과 불법 정치자금 제공 사실이 드러나 SK의 핵심 경영진들이 줄줄이 기소되고 주가가 곤두박질친 것을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문학적인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불법인줄 알면서도 버젓이 정치자금을 제공한 배경에는 투명하지 못한 기업지배구조가 놓여 있다. 소버린의 이득은 투명하지 못한 기업지배구조 때문에 SK와 한국국민들이 치른 댓가이다. 때문에 소버린 사태 이후 SK가 제시한 해법은 단순 명료했다. '이사회 중심 경영'을 통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었다. 그것은 소버린의 요구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 시장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재벌이 논리 제공→금감위가 대변→수구언론이 재생산' 전형적 왜곡 매커니즘
수구언론의 왜곡은 7월12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의 발언을 앵무새처럼 되뇌인 것이다. 윤 위원장은 "어떤 지배구조가 이상적인지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 스스로 결정할 사안이며, … 많은 수익을 내서 세금이나 임금, 배당을 많이 주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좋은 것이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 직후 일부 언론들은 윤 위원장의 발언이 노무현 정부의 재벌개혁 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요청을 사실상 거부해온 특정 재벌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했다고 비판했다. 특정 재벌이 논리를 제공하면, 금융감독기관의 최고책임자가 이를 충실히 대변하고, 그것을 다시 수구언론이 확대 재생산하는 전형적인 왜곡 메카니즘이다.
윤 위원장의 발언은 재벌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주무부처 장관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정책의 방향성과 일관성을 해쳤다는 부적절성 외에 내용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노무현 정부의 재벌정책은 김대중 정부를 계승했다. DJ의 재벌정책은 국내기업의 후진적 지배구조가 외환위기를 초래한 근본원인 중 하나였다는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추진됐다.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그대로 놔둘 경우 우리나라가 언제든 위기를 또 다시 맞을 수 있다는 인식의 공유였다. 그것이 이른바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상호채무보증 해소, 핵심역량 집중, 지배주주의 책임 강화 등 강력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정책을 담은 '5+3 원칙'이다. 윤 위원장의 발언은 외환위기의 교훈을 완전 뒤집는 것이다.
선진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도 바람직한 기업 지배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 노력을 펴고 있다. 선진국이 지배구조에 재차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1년 하반기 이후 미국의 엔론, 월드컴사태 같은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이다. 미국은 회계처리에 대한 최고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02년 ‘사베인스 옥슬리법’까지 제정했다. 선진국들 모임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도 지난 1999년 5월 각료회의에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약’을 채택했다. 지난해에는 관련 내용을 개정하면서, 재벌 같은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집단의 경우 지배주주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권한을 남용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규제장치가 필요하며, 그것을 위해 소유구조가 중요하다고 명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