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새벽 남편을 살해하기 전 각목 등으로 맞아 이씨가 흘렸던 피가 수건과 이불에 묻어 있다.오마이뉴스 윤성효
10여 년간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상담하면서 어쩌면 여자들이 이토록 똑같은 답안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이래도 여성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할 것인가 가슴을 친 적이 많다.
“경찰에 신고하지 그랬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가정폭력을 신고해 본 적 있냐고 묻고 싶다. 상담소장으로서 가정폭력 사건의 중재자가 되기 위해 심야에 여러 번 경찰서에 가보았다. 우선 경찰은 가정폭력사건을 매우 난감해한다. ‘부부문제라는 게 다음날 화해하면 우리만 우스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핑계이다.
일반 폭력사범의 경우도 다음날 당사자끼리 합의보고 화해하지 않는가. 경찰의 역할이란 어차피 그 전까지 공권력으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가. 핵심은 가정 폭력이 폭력범죄라는 개념이 분명히 머리속에 박혀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가정폭력방지법이 만들어진 지 꽤 되었지만 법을 집행할 의지가 없는데 무슨 소용인가. 의지가 없으니 대응도 미숙할 수밖에. 상담현장활동가들이 경찰 요로에 또 행정부서에 ‘경찰교육강화’를 요구해 온 게 어제오늘이 아닌건만, 달라지는 기미가 전혀 없으니 문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격이니, 나라고 해도 경찰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폭력의 고통을 당해본 다음이 아니고는 그 아내의 죄과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어린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를 어른이 되어 살해한 김부남씨는 ‘나는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고 절규했다. 그 아내에게 살인자라고 남편을 죽인 나쁜 여자라고 중형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당신이 그토록 인권을 소중히 여긴다면 지금 이 순간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길 만큼 고통스런 순간을 맞고 있고, 그것이 반복되는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겠지’,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야’, ‘여자 하나 참으면 집안이 조용할텐데’ 그 아내의 귀에 들려오는 세상의 목소리는 이랬다. 죽을 수 없기에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 아내에게는 가정폭력에 무관심한 사회, 벗어날 길이 없다는 좌절을 심어준 세상이 진짜 살인자가 아닐가. 그렇다면 우리모두가 공범이다. 최소한 살인 방조죄를 면키 어렵다.
출산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것이 개별가정의 개인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노동력과 경쟁력의 문제라고 인센티브를 개발하고 나서서 홍보하고 계도하던 국가가 왜 가정폭력문제는 가정에 위임한 채 이토록 침묵하는 것인지. 언제까지 ‘고양이’를 물고 살인죄를 뒤집어 써야하는 ‘쥐’들을 반복생산해 낼 것인지. 어머니의 의무와 자녀양육의 중요성은 강조하면서 어머니의 권리, 아니 최소한의 신변안위조차 책임져주지 못한다면 정말 무능한 국가가 아닌지. 어떤 못된 남자 만날까 딸 낳아 결혼시키기 겁나니 출산률이 높아지긴 애저녁에 그른 게 아닌지. 내 머리 속에서는 냉소적인 물음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지금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희생되는 여성과 아이들은 적지 않은 숫자이다. 언론에 사건으로 보도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요, 지뢰밭에서 지뢰 하나 터진 격이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그 후유증이 사회적으로 확산된다는 데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경찰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하는 표창원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가정 폭력은 가장 무서운 근저범죄이다. 범죄자들의 성장과정을 보면 그들 자신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 유영철도 가정폭력을 피해 어머니가 가출하자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여성일반에 대한 적개심이 되면서 끔찍한 연쇄 살인을 불렀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나올 만큼 세계가 폭력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학원폭력, 사회폭력, 상업적 매체들의 폭력 미화 분위기까지 나날이 폭력에 심해지면서 불감증이 나타나고 있다.
가정폭력, 국가는 왜 외면하나
가정폭력의 근절없이는 폭력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개선의지만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예비군/민방위 교육에서 남자들에게 가정폭력이 이제는 범죄라는 사실을 교육시키고, 국민에게 간첩 신고를 장려했듯이 가정폭력범을 신고하게 하고 가정폭력은 가중처벌을 하고(살인죄도 직계존비속에 대해서는 더 무겁게 벌을 하듯이 사랑하고 보호해야할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한 죄는 더 크게 벌해야 할 것이다) 의처증과 알콜중독에 걸린 가해자들을 격리시켜 치료하는 등 당장 떠오르는 일만 해도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정당방위적’ 살인은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놔두고 나가기 보다, 아이들을 위해서 아비를 죽인 어머니, 즉각적인 자수로써 살인자의 멍에를 순순히 진 그 여성을 ‘어머니의 용기’로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떠들썩했어도 사흘이면 잊는 법, 형사상의 벌을 떠나 어머니와 두 딸은 일평생 그 상처와 짐을 고스란히 떠메고 가야 할 것이다. 이들에게 ‘동냥은 못 줄 망정 쪽박을 깨는 일’만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텐데, 가슴이 아프면서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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