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의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등록 2005.06.04 09:31수정 2005.06.0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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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책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산해

책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헬렌 켈러 자신이 직접 쓴 두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이 만약 사흘만 볼 수 있다면 가장 보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묘사한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제목의 글이며, 다른 하나는 23세까지의 삶을 서술한 '내가 살아온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이다.

헬렌 켈러가 문학적인 소질이 있었으며 엄청난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이다. 만 이 세도 되기 전에 시력과 청력을 잃은 그녀가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묘사력과 문장력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의 방대한 독서량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들은 그녀의 글이 상상력에 의한 거짓 문장들일 뿐이라는 비판을 던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암흑의 세계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이 그려내는 이 세상 이야기가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이 묘사하는 것보다 더 자세하고 미적이기 때문이다. 마치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것처럼 그려내는 그녀의 글들은 그런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두 편의 에세이를 끝까지 읽고 나면 이러한 의구심은 줄어 들고 헬렌 켈러라는 한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 든다. 그녀는 매우 솔직하게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의사 소통을 배우고 표현력을 갖게 되었는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리고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손으로 만지고 피부로 느끼며 다른 감각을 동원해 얻은 온갖 경험과 지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표현한다.

"내가 만일 단 사흘만이라도 앞을 볼 수 있다면, 가장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나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펴는 동안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내 눈을 어떻게 써야 할까?' 셋째 날이 저물고 다시금 어둠이 닥쳐 올 때, 이제 다시는 자신을 위한 태양이 떠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이제 그 사흘을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여러분의 눈길을 어디에 머물게 하고 싶습니까?"

이렇게 시작하는 글은 우리가 눈을 뜨고 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가를 일깨워 준다. 자신은 숲 속을 거닐면서 나뭇잎이 뿜어내는 온갖 다양한 향기와 나무껍질의 서로 다른 느낌, 발에 채이는 돌부리가 가진 각양각색의 모양들을 너무나 신비롭게 생각하는데, 주변의 눈이 보이는 친구들은 그저 '숲에는 별 거 없어'라고 간단히 말한다는 일화. 이 일화를 통해 그녀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놓치고 산다'고 전한다.

일상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는 자신의 삶을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인다. 눈을 뜨고 무언가를 보는 것, 어떤 소리를 듣는 것, 입으로 표현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있어 그저 평범한 하루 일과에 불과하다. 헬렌 켈러는 이러한 사람들의 일상을 매우 안타까워 한다. 무심하게 하루를 보내고 주변의 것들을 흘러 보내면서 우리의 삶이 언젠가 끝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첫째 날은 아주 바쁠 것 같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그들의 얼굴을 오래오래 들여다 보며 그들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의 외적인 증거를 가슴에 새길 것입니다. (중략) 그토록 바쁜 첫째 날에, 내 작고 아담한 집도 돌아보고 싶습니다. 내가 밟고 있는 양탄자의 따뜻한 색깔, 벽에 걸린 그림들, 집안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있을 친밀감 넘치는 장식물들도 보고 싶네요."

얼마나 사소한 것들이면서도 소중한 것들인가. 헬렌 켈러는 이처럼 일반인들이 지나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일깨워 주며 이 글을 마친다. 이 첫 번째 에세이는 그녀가 50대에 쓴 것이라고 한다. 평생을 암흑에 갇혀 살면서도 이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예찬과 넘치는 사랑을 잃지 않았으니, 그녀의 빛나는 마음은 칭송 받을 만하다.


두 번째 에세이 '내가 살아온 이야기'는 청년 시절에 쓴 만큼 아주 솔직하게 자신이 어떤 교육 과정을 거쳐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이 글에는 설리반 선생을 비롯하여 자신을 이끌어준 세상의 많은 동반자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그리고 맹아, 농아들이 어떤 불편을 겪고 있는가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담겨 있다.

그 설명들은 지시적이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들이기에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일반인들은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어떠한 불편을 겪으며 사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헬렌 켈러만 하더라도 처음에 몸짓을 제외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어떠한 의사소통의 도구'도 갖지 못하여 분노에 휩싸였다고 한다.

수화 알파벳 등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빠른 속도로 습득해 간다. 그 과정은 놀라울 만치 끊임없는 인내의 연속이었으며 노력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그 힘든 과정을 통해 그녀는 더욱더 성숙되고 발전하는 자아를 찾아간다.

"나는 진작부터 주위 사람들이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듣지 못하는 아이도 말하기를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기 훨씬 전부터 나는 내 의사소통 방식이 불만스러웠다. 전적으로 수화 알파벳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항상 그 제한된 한계 속에서 갑갑증에 시달린다. 이런 느낌 때문에 항상 뭔가 더 채워져야 할 것 같은 결핍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들볶는다."

패배와 좌절을 맛보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그 강도는 각각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삶의 쓴맛을 언제나 경험하며 산다. 하지만 패배와 좌절을 겪는 모든 사람이 헬렌 켈러처럼 그것을 극복하며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만약 자신만이 세상에서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녀의 글을 읽어 보자.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 불편함을 늘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 속에서도 헬렌 켈러는 '나도 당신들과 똑같이 사고하는 한 인간입니다'라는 극명한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는 '보고 듣는 것만이 다 아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대했다. 그녀처럼 모든 고난을 거꾸로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에게 닥친 시련이 결국은 자아발전을 위한 토대가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서평 웹진 <리더스 가이드>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서평 웹진 <리더스 가이드>에도 실렸습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그리고 헬렌 켈러 이야기

헬렌 켈러 지음, 신여명 옮김,
두레,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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