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식의 부재를 심화시킨 드라마 <토지>

<토지> 상영 시기마다 역사의식 달라

등록 2005.05.30 10:56수정 2005.05.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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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봉건적 토지 관계에 내재한 모순에 대한 관심과 변혁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를 지적받는 작품이다. 즉 역사의식이 부재하다는 비판이다. 그러면 역사드라마인 <토지>는 이러한 원작의 한계를 뛰어넘는가. 4차례 영상화된 <토지>에 나타나는 역사의식은 어떠한 모습인가.

1974년 영화 <토지> 만주행을 결심한 최서희는 김 훈장을 찾는다. 김 훈장에게 '땅문서'를 건네주며 '지주-소작인'의 모순 관계가 사라져야 한다고 한다. 지주의 노력 없이 얻은 땅과 곡식은 소작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서희의 의견에 김 훈장은 감동한다.

그래서인지 소작인들은 최 참판가에 충성한다. 따라서 동학이나 민중 봉기는 지주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라기보다는 고난을 겪는 여주인공 서희를 돕기 위한 의도로 표현되면서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자리할 곳을 잃게 된다. 최서희가 영특한 인물이긴 하지만, 세상 물정 어두운 10대의 생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1979년 드라마 <토지>는 평사리 농민들과 최 참판가의 갈등이 부각된다. 추수철을 앞두고 형편이 어려운 농민이 세를 감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평사리 소작인과 최 참판가 하인들의 몸싸움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농민들은 소작을 빼앗기게 된다. 이에 농민들은 절규한다.

1974년과 1979년 <토지>가 한일관계가 조명되지 못한 까닭은 소설 <토지>가 완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4부까지 창작된 후 만들어진 1987년 <토지>와 완간된 이후 영상화된 <토지>의 역사의식은 어떠한 모습인가.

1987년 <토지>에서 평사리 농민과 최 참판가의 관계는 우호적이다.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 대신 부각된 것이 한일 관계이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일본인과 한국인의 관계 등을 통해 역사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보다는 일제 치하 삶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2005년 <토지>도 전반적으로 1987년과 유사하다. 평사리 소작인들은 최 참판가를 은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지주와 소작인의 모순관계가 그려지지 않았다. 대신 일제 치하에서 핍박받는 한국인의 삶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소작인뿐만 아니라 지주 최서희도 핍박의 대상이라는 점이 색다르다. 최서희는 자신의 토지가 일본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소작인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러나 소작인들의 요구나 반응이 제시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친일파와 독립 운동가들의 갈등이 역사보다는 개인의 복수가 우선시된다는 점은 역사의식을 흐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한 최서희가 재산을 빼앗기고 도망갈 수밖에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화기의 허술한 법이나 혼란한 시대상황이 다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악인 조준구의 성격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시대의 모습을 드러낸 기회를 잃고 만다.


1987년과 2005년 <토지>는 한일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전 두 작품이 지주·소작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과 비교된다. 이는 작가의 역사의식의 변화가 아니다. 1987년과 2005년 <토지>는 주인공 최서희의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한일 관계를 부각한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 <토지>는 역사보다 개인의 삶이 우위에 놓인 원작의 한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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