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이념이 거세된 로맨티스트 최윤국

등록 2005.05.23 11:10수정 2005.05.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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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국은 일본에서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Y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동경에서 비밀결사의 이론적 지도자로서 깊이 관여한다. 최환국이 김길상을 닮았다면, 최윤국은 최서희의 성격을 많이 닮았다. 어린 시절 집착이 강했던 최윤국은 매우 강건하고 정열적이다. 부자, 양반에 대한 지나친 혐오로 최서희나 집안 하인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사교적인 성격인 최윤국과 비사교적인 성격인 최환국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이하다. 때문에 최윤국의 급진적인 사상과 행동은 늘 최환국을 불안하게 만든다. 최윤국 역시 형과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긴박하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갈등하는 형제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것도 의미있는 각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윤국은 '최윤국-이양현-송영광'의 삼각 구도에 갇혀 자신을 표현해내지 못한다. 각색 과정에서 최윤국의 이념은 사라지고 오로지 양현을 사랑하는 남성으로만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양현에 대한 최윤국의 각별한 사랑이 곳곳에 배치된다. 이념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가출한 그가 양현이 건넨 나뭇잎을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젊은 지식인인 그의 고뇌를 옅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 윤국의 양현에 대한 사랑은 어떤 성격의 것인가? 그 사랑이 명확히 밝혀졌나? 아니다. 양현에 대한 윤국의 사랑은 연민이다. 아편쟁이 기생의 딸이지만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양현의 이중적인 상황, 즉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아야 하는 양현의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지 않도록 해주기 위해서 그녀를 택한다. 사회가 아닌 최참판가 안에서는 그녀에 대한 사랑만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들면서 말이다.

최윤국의 이러한 사랑방식은 이전에도 있어왔던 것이어서 낯설지 않다. 부모 잃고 주막집 양녀로 있는 숙이에게 느꼈던 연민도 이와 유사하다. SBS <토지>에서는 그러한 숙이를 드라마에 등장시키지 않음으로써 순정파 최윤국을 강조한다.

불쌍한 여성 숙이에 대한 감정은 최서희의 저지로 중단된다. 그런 최서희가 최윤국과 이양현의 결혼은 간절히 원한다. 최서희는 장남인 환국이 중매를 통해 집안의 위신을 세워줄 결혼을 했기 때문에 윤국마저 그러한 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최서희는 차남 윤국이 위신 대신에 사랑을 택하게 만든다. 결정적으로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이상현과의 사랑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한다. 그러나 양현이 윤국과의 결혼을 거부한다. 이에 아들 윤국이 자진입대하자 고통스러워한다.

SBS 드라마 <토지>에서는 진주경찰서장이 양현에게 군의관 지원을 강요하자 이를 막기 위해 윤국이 자진 입대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또한 양현을 송영광에게 보냄으로써 넓은 가슴을 가진 이상적인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이 모두 양현에 대한 윤국의 사랑을 깊이있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이다. 연민으로 양현을 사랑했던 윤국이 과연 송영광과의 결혼을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 회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한편 SBS 드라마 <토지>에서는 오태경이 윤국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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