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비행기에 되돌아온 몽둥이 체벌

2005년 한국 교육이 극복해야 할 것

등록 2005.05.21 17:09수정 2005.05.2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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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들어 학원가가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의 어린 학생들이 경쟁적 입시제도 반대와 과도한 두발규제 철폐를 주장하며 지난 7일과 14일에 광화문에 모여 자신들의 뜻을 주장한 바 있다. 오늘(21일)도 광화문에서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뜻을 거리에까지 나와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예사로 지나칠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눈치는 있었는지 교육부총리까지 나와서 '사태의 조기진화'에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무마될 것 같지는 않다. 첫째, 사안 자체가 구조적 모순에 기인하고 있으며, 둘째, 우리 기성세대는 학생들의 이 정도의 가벼운 요구를 무난하게 처리해 낼 정도의 유연함을 현재로서는 결코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학교의 일상적 폭력

지난 19일에는 서울의 S공고에서 학생들이 5분 동안 두발규제 폐지를 주장하며 종이비행기 시위를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학교측은 학생 8명을 시위주동 학생으로 지목해, 학생들이 시위주동사실을 부인할 때마다 심한 체벌을 가했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는 지난 1998년에도 선생님이 라이터불로 한 학생의 머리카락을 태우면서 두발단속을 하자 집단으로 종이비행기를 날렸던 적이 있다고 한다(경향신문 5월20일).

학생들은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던 문제가 절실했음에도 철저하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하지만 학교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몇몇 학생들을 지목한 후 '범행사실'을 시인하라고 윽박지르며, '체벌'이라는 미명 하의 '폭력'을 행사했다. 미쳤다. 이것이 사실인가? 이것이 뒷골목의 불량배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21세기의 백주에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란 말인가?

명료한 언어를 수단으로 표출된 학생들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하며,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지도력을 행사해야 할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자신들의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아마도 학생들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했던 것에 분노하며 '폭력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사례 외에도 무수한 폭언이 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며, 그 마음에 반사회적 반인간적 감정의 씨앗을 뿌린다. 이런 일은 그러나 불행히도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인근학교의 행사에 참석했다가 교장선생님이 연설을 하시면서 "돌대가리"라는 말을 매우 자주 사용하시는 것을 들었던 적이 있다. 일상적 폭력이 학교의 지배문화가 되어 있지 않은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구조적 폭력은 어떤가? 한 학생이 헌법상 국민의 권리를 학교에서도 보장 받을 수 있기 위해 46일 동안이나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해야 했던 일은 학교의 의사결정체계가 매우 비민주적이며 원시적인 것이란 점을 방증해 주고 있다.

교육: 경험의 재구성? 잠재력 계발?

교육이 인간의 잠재능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했던가? 한국의 현실에서는 교육은 단순히 '경험의 재구성'일 뿐이다. 쉽게 말하면, 자기가 당했던 것을 되돌려 주고 있을 뿐이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이며 부조리했던 학교환경에서 생활을 했던 이전의 학생들이 선생님이 된 후 그 제도와 관행을 그대로 아들 세대에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스스로 타율의 대상이었던 우리가 타율에 의존하는 교육을 수단으로 또 다시 타율적인 인간을 대량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폭력과 폭언에 마음 아파했던 우리가 다시 우리 아이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대물림 함으로써 폭력과 폭언을 주고 받는 데에 익숙한 후세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진회'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의 선생님들이여, 교육부 관리님들이여! '사람'이란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셨던 적이 있는가?

사람은 자신을 대우해 주는 그대로 되돌려 주는 존재이다. 믿고 사랑해주고 관심을 기울여 주며 칭찬해 주면, 그 기대를 충족 시키기 위해 반드시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다. 마구 대하며 욕하며 저주하면, 인간은 누구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하게 되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성취를 이루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거친 인간이 된다.

이제 21세기이다.

오랜 독재의 터널을 지나온 이후 아직도 사회의 곳곳에 심지어 가정에도 독재가 할퀴고 간 상처가 폭력이나 폭언의 형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희망하는 사회를 마음 속에 품고 있다.

교육의 전환을 위해

우리는 고민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과 언행을 통해 지속적으로 잘못된 구조를 재생산해 나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우리는 낡고 불합리한 것을 끊어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전환은 우리 사회에서 기성세대와 청소년 세대가 이루어낼 수 있다.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억압적인 문제해결방식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학교 선생님은 목소리도 낮추고 자세도 낮추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의 언어 습관상 우리의 유교적 문화에 기인하는 권력 격차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격무에 힘드신 줄은 안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수가 많아서 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 몰합리적이며 폭력적으로 학생들을 대하지는 말자.

더 나아가서 학생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도록 가르쳐라.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창의성과 자기 생각을 표현하도록 장려하라. 최소한 막지는 마라. 비록 유치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그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나이에 있다.

교육부는 주도권을 쥐고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생들의 인권침해 사례들을 파악해라. 학교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학생회 간부들을 초청해서든지 아니면 보통 학생들을 초대해서 들어보라. 자녀의 명문대 진학에 올인하고 있는 소수의 학부모들은 배제시켜라.

그리고 그들의 말이 틀리면 설득하고, 옳으면 학교와 절충하여 요구를 들어주라. 우리 아이들은 이미 강의석을 경험했던 세대이며 학교장까지 나서서 참가하지 마라고 했던 집회를 성사시킨 아이들이다.

더욱이, 발생하는 현안에 대한 임기응변적 대응으로 넘어가기에는 문제의 양태가 너무 후진적이며 우리 학생들도 많이 성숙했다. 교육부는 학생들과 대화하라. 해서 학생들이 폭력적 조건과 폭언에 보다 덜 노출될 수 있는 방책을 세우며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라. 이것은 어른다운 일이며, 교육부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다.

교육부는 여기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교육철학을 시대에 맞게 재정립하고, 입시정책을 포함한 모든 학교정책을 이 철학에 합당하도록 수립하여야 하며, 이에 기초해서 일선 학교들을 지도·감독해야 할 것이다. 그 교육철학에서 개인의 인권과 창의성 보호 및 장려의 원칙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덧붙이는 글 | 이철기자는 동양대학교 행정경찰복지학부 교수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철기자는 동양대학교 행정경찰복지학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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