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이 억눌려온 시대의 종말을 위해

교육문제의 사회적 해법

등록 2005.05.08 16:24수정 2005.05.0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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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모두 20여명의 학생들이, 특히 지난 2주간의 중간고사 기간에 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제 광화문에서는 400여 명이 학생들이 모여 희생된 학우들의 추모제를 열었으며, 추모제 중에는 '내신도 본고사도 입시교육은 싫다'라는 유인물이 돌기도 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이슈가 되어 왔던 우리의 교육현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단언컨대, 우리나라의 입시 및 교육 문제는 결코 교육부 차원에서의 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지난 50여년 동안 10번이나 정책을 바꾸어 보지 않았나? 비관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원인과 해법이 교육 외의 다른 곳에 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다.

사실 조금만 분석적으로 보면, 어떤 입시정책이나 교육정책도 '교육열'이라는 용광로를 거치고 나면, 정책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음을 알 수 있다.

조기특성교육을 의도했던 특목고 제도는 중학교까지 입시열풍에 휩싸이도록 했으며, 공교육 정상화를 의도했던 내신제도 도입이 오히려 사교육 활성화를 가져 왔고, 수능시험의 변별력이 높았든 낮았든 언제나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불평이 제기되었으며 이듬해 사교육은 어김없이 강화되었다.

교육열은 원인이 아니라 현상

그렇다면 '교육열'이 교육문제의 주범인가?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교육열은 원인이 아니라 현상이며 결과이다.


보통의 학부모들로 내려올수록, 교육열은 부모들 스스로 겪었던 어려움, 서러움, 비참함 따위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으며 자식들이 부유하고 걱정 없으며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소원하는 마음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교육열은 때로는 보통 사람들의 한의 표출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 동기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며, 그 자체로 (개인적인 수준에서) 합리적인 것이며, 사회에 대한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나타나든 집단적으로 나타나든, 교육열 자체는–집합적인 차원에서–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정책의 초점이 될 수 있을 지점으로 보기는 힘들다.


문제는 이 교육열을, 보통의 부모들이 그들의 절실한 소원을 풀어 줄 마법사의 구슬처럼 보이도록 했으며, 동시에 거의 유일한 생존전략으로 수용하도록 만들었던 사회적 조건들이자 사회적 경험들이다.

필자는 먼저 이러한 사회적 조건들로서, 개인의 교육열망이 사회적으로 보상 받을 가능성이 일원화되어 있으며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수십만 명의 경쟁자들이 단지 하나의 종목에서 서열화된 결과를 얻게 되는 현재의 우리의 제도는 한 마디로 너무 원시적이다. 게다가 이것은 평생에 걸친 레이스에서 대학입시경쟁이 결정적인 비중을 지닌다는 점과 함께 경쟁을 너무 극적인 것으로 만들고 동시에 고비용으로 만든다.

제도는 이 지점에 개입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입시정책 개정안들은 실제로 다양한 입학가능성을 열어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 수시 입학, 특기자 전형과 여러 차례의 전형 등은 가능성의 다원화라는 점에서 일단 바른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이라 필자는 판단한다.

그러나 부분적이다. 효과를 보기에는 미흡하다. 이 방향에로의 제도개혁의 완성도가 높아지려면, 대학 평준화, 특성화, 전문화가 보다 큰 정도로 진척되거나, 신입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는 현재의 대학생활을 정말로 치열하게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졸업제도를 엄격하게 하는 것이다.

이 사안들은 중기 계획에 따라 추진해야 할 사안이며, 또 현재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교육부 정책에 힘을 실어줄 일이다.

경쟁 틀의 복수화 처방

빠뜨리고 싶지 않은 점 하나는, 독일의 교육제도에서처럼 '종목' 자체를 복수화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초등학교 4년 동안 한 분의 담임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후, 실업계와 인문계로 진학한다. (이 때 결정된 계열을 이후 정정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실업계는 최고 마이스터 학교에까지 진학할 수 있으며, 인문계는 대학에 진학하여 박사학위까지 도달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마이스터와 박사가 (일자리를 얻는 경우에) 사회적으로 받는 보상이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 제도는–그 자체로 부족한 점이 없진 않겠지만–철저히 학생 친화적이라 할 수 있다. 개인에 따라 지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차이가 있는데, 가능하면 많은 학생들의 개별적인 발달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이다. 10대 후반에 다소 게을렀더라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석사를 두 개 이상 따는 아이들도 있고, 실업계를 마친 후 대학에 오는 경우도 많다. 사설학원은 보습학원도 입시학원도 없다.

이 '종목'의 복수화 처방은 지금까지 정책적으로 추구해 왔던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각 종목이 다수의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도록 사회적 보상이 약속되어 있어야 비로소 그 결실을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가 '입시 종목의 일원화'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원인은, 성인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하나의 동일한 가치(부자!)를 추구하는 게임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와중에 수많은 비인간적인 사회적 사건들을 경험했으며, 이 경험은 이제 우리의 뒤틀린 '신앙'으로 공고화되어 있다.

현재의 학부모 세대는 그들의 삶을 통해, 한 개인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매 순간 경험하거나 목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이나 사고로나 병으로 인한 실업이나 혹은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이, 그들의 고통을 (죽음으로) 호소하든 호소하지 않든, 중세 농노의 삶과 별 차이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매일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모으러 다니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본다. 이 정도의 어려운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몇 년 전에 어떤 아파트를 사지 못했던 것을 가슴을 치며 후회하기도 하며 불안한 미래를 향해 겁먹은 삶을 살아 나가고 있다.

이런 저런 시대적 사회적 경험들이, 우리로 하여금 공부하지 않는 자식들을 볼 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아이들에게 발산하도록 한다.

'내가 바담 풍 했어도 넌 바람 풍 해야 할 거 아냐!'

부모인 우리가 아이들에게 소리치도록 만드는 이 사회적인 집단적 경험이 바로 교육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입시교육 없는 학교'를 지향할 때 바로 이 집단적 경험을 완화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견강부회일까? 교육열이 교육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현상이며, 교육열이 현재 학부모 세대의 집단적 사회적 경험에서 기인한다면, 교육문제의 뿌리는 바로 이 (부정적인) 사회적 경험과 이 경험을 가능하게 했던 여러 잘못된 사회적 관행들이다.

교육문제의 사회적 해법

그렇다면, 보자. 현재의 교육부 정책과, 로드맵을 따라 진행되고 있는 각종 정부 정책이 어떤 가치를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지. 정책들이 '상식과 원칙이 살아 숨 쉬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면, 이 정책들은 궁극적으로는 교육문제의 뿌리를 겨냥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 저출산 문제, 수사권 조정 문제, 사립학교법안, 과거사 청산법, 지방자치제, 행정수도 이전 등 교육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많은 이슈들이 내게는 교육문제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 모두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의 문제와 관계하고 있으며, 동시에 보다 상식적인 사회의 건설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고리인 교육열을 완화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이슈들이다. '추구할 만한 가치'가 다원화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는 이슈들이기 때문에 '경쟁틀의 다원화'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한나라당과 조선·중앙·동아가 위 사안들에 대해 표명하는 입장(사립학교법 제정반대, 과거사청산법 반대) 등의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더듬어 보시라. 조선일보는 철저하게 소수만 혜택을 입을 비평준화 정책을 주장했으며, 내신 상대평가에도 절대평가에도 지속적인 딴죽을 걸었던 신문이다.

과거에 현상적인 불만에 기름을 붓는 기사들과 여타의 기득권 보호 정책으로 현재의 교육문제의 씨를 뿌려 놓았던 이들은 우리가 애써 돌이켜 놓은 길을 되낚아챌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최근에도 학생들의 추모제를 '본고사 부활'이라는 자기들 입맛에 맞는 포장지로 독자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는가? 경계할 일이다.

앞으로 치를 선거를 통해 여야 누가 정권을 잡든지, '상식과 원칙이 살아 숨 쉬는 사회'를 지향하는 정책, 소수보다는 다수를 위한 정책을 지향하도록 상시적으로 감시하며 압력을 가함으로써, 어른들 스스로 '바보같이 억눌려 온 시대의 종말을 위해' 몸부림칠 때, 우리의 아이들이 '바보같이 억눌려 온 시대'를 졸업할 때가 가까워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www.seoprise.com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www.seoprise.com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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