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온통 생나무 밭이네"

살아갈 힘을 주는 글쓰기의 즐거움

등록 2005.04.21 22:05수정 2005.04.2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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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나무~ㄹ(물)가 뭐야?"
"으~응, 그건 정식 기사로 채택되지 못한 글이란다."
"근데 엄마 건 온통 생나무~ㄹ(물) 밭이네. 그러면 오늘 저녁 반찬은 아예 생나물을 무쳐요. 엄마, 생나물 반찬 좋아하잖아!"


경상도에선 무를 채 썰어 식초와 마늘, 설탕, 고추장, 깨소금을 넣고 새콤달콤하게 묻혀 먹는 나물 반찬을 생나물 반찬이라고 한다.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를 넣기도 하지만 고추장으로 무치는 것이 더 깊은 맛이 난다. 그것에 길들어져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진하고 톡 쏘는 맛이 칼칼한 경상도 사람의 특성을 잘 말해 주는 듯하여 좋다.

딸아이가 나에게서 '생나물'이라는 말을 듣긴 들었는데 <오마이뉴스>에 뜬 생나무(기사)와 좀 혼동이 됐나 보다. 그래서 생나무도 아니고 생나물도 아닌 묘한 발음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풋고추 쏭쏭 쓸어 넣고 생나물과 콩나물에 고추장을 한숟갈 푹 떠 넣고 쓱쓱 비벼 먹어야 할 것 같다.

원래 비빕밥은 머슴들이 먹던 밥이라 한다. 느긋이 앉아 밥상을 받을 수 없었던 시대의 서글픈 일이지만 지금은 비빔밥이 각광 받는 웰빙 식품이 됐다. 생나물로 한 양푼이나 비벼 들고 식탁에 앉으려니 전화벨이 울렸다. 친정 아버지였다.

"근데 요즈음 글 안 쓰냐?"
"최근 들어 쓰긴 시작했어요."
"그란데 니 글이 요즘 잉걸에 없더라."
"예, 그렇게 됐어요."

"열심히 쓰그래이. 나이 들어 글 쓰는 것 만큼 좋은 게 없는 기라. 어쩌다 문예지에 니 글 발표했다 할 때가 얼마나 좋은지 아나. 동네에 막 자랑하고 싶지만 꾹 참고 있데이. 어떤 게 좋은 글인지는 내사마 잘 모르겠지만서도 그냥 좋은 기라."
"네, 아버지~"
"그라고 '꿈꾸는 개구리알'이라고 알지 모르겠네. <좋은 생각>이라는 책에서 읽었는데 말이야."
"아~ 네, 저도 알아요."
"그렇다면 전화 끊으마."


그러고 보니 나도 읽은 생각이 났다. 어느 한 연못가에 개구리와 거북이가 놀러와서 앉아 있곤 하던 작은 돌덩이 하나가 있었다. 하루는 돌덩이가 물에 둥둥 떠 있는 까만 알을 보고는 물었다.

"넌 누구니?"
"난 개구리알이에요."
"그래. 너도 나처럼 그곳에 갇혀 지내는구나."
"아니예요. 난 이곳에서 꿈을 꾸며 지내고 있어요. 개구리가 되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꿈을요. 돌덩이 아저씨는 꿈이 없어요? 나 같으면 역사에 길이 남을 조각품이 된다거나 하는 꿈을 꾸며 살아 갈 거예요."


정말 멋있는 말이었다. 내 메일에 들어와 있길래 저장해 두었던 글이었다. 메일을 열 때마다 한번씩 읽어 보곤 했던 것이다.

꿈이 없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이 될까.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잊어 버리고 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 났을 때 '내일은 꼭 해야지' 다짐하고 자는 것도 꿈이 될 수 있다. 너무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좋다.

내일은 생나무가 아닌 잉걸에 내 글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걸려 있는 소박한 꿈 하나 꾸어 본다. 꿈꾸는 개구리알처럼 글을 쓸 수 있다는 희망만큼 즐겁고 신나는 것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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