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로 친 고운 상토로 볍씨를 덮어줍니다. 혹여 듬성듬성 빠진 곳이 있나 살펴도 보고요김혜경
지리산의 봄은 화사한 매화로도 오고 노란 생강나무 꽃으로도 오고 나무마다 두꺼운 겨울눈을 터뜨리는 여릿한 새잎으로도 오지만, 정작 봄이 오는 것은 들녘마다 갈아엎어지는 땅, 여기저기 분주해진 사람들의 손끝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봄 농사 준비가 한창인 마을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었는데, 지나다보니 하황 마을 어른들 몇몇이 모판에 흙을 바삐 채우고 계십니다. 바쁜 분들한테 사진 찍으러 다가가기 미안해 쭈뼛거리며 사진 좀 찍고 싶다고 하니 어르신 한분이 "거 바쁜디 사진은 무슨, 꼭 놀러 다니는 사람같구로" 하십니다.
생각했던 대로 영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글쎄 말여요. 못자리하는 것 모르는 사람들한테 사진 찍어 좀 알려줄라고요. 좀 도와드리기도 하면서 찍는다 해야하는디, 바쁘신디 미안하네요." 젊은 아주머니가 환히 웃으시며 "그럼 낼 와요. 낼 못자리 할 거니까 낼 찍어야 어떻게 하는지 알지" 하십니다.
미안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그럼 낼 막걸리 사갖고 오겠다고 하자 논 주인인 듯싶은 어르신이 그냥 찍을 수 없다며 십만원 내고 찍으라고 농을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