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갑니다 | | | 2004년 문학예술인 창작농활단 출발을 맞아 | | | | 우리는 농민들을 잘 모릅니다. 농민들의 일을, 농민들의 삶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사고 팔 수 있는 교환물은 아니라는 것쯤은 압니다. 우리 모두 한때 땅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일처럼 희미합니다. 어디에서 나서 어디에서 길러져 어디에서 자라났는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배우러 갑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우리는 다시 농민들의 삶을 만나서 배울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지키기 위해서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갑니다. 수천 년 우리의 뇌리 속에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 온 아름다운 기억들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그 자연이었습니다. 농민들의 삶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그 자연을 함부로 취급하는 나쁜 일입니다. 농민들은 갖은 모욕 속에서도 허리를 굽히며 모두를 살리기 위해 그 자연을 섬기며 자연의 이치를 지켜온 분들입니다. 그 분들을 지키는 것은 나를, 우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반도체나 자동차, 기타 공산품 얼마를 파는 일보다 그래서 내가 조금 더 싼 가격으로 먹거리를 사먹을 수 있어 잠시 잠깐 혜택을 보는 일보다 한층 소중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존귀함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삶의 가치를 경제적 이윤 가치로만 따지려 하는 것은 한심하고, 재미없고, 아무런 생각 없는 사람들이나 할 일입니다.
만약 무분별한 식량시장 개방으로 이 땅의 농민들을 죽이겠다면, 우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평생을 지켜 온 업을 버릴 생각이 있느냐고, 허락해 주겠느냐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현재의 식량시장 개방은 한국의 서민들을 지키는 일도, 세계 노동자들의 생계를 지키는 일도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소수 초국적 식량자본들의 이해와 요구만을 지켜주기 위해 추진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시장개방 움직임은 중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류의 수많은 노고 위에서 자신들만의 안락을 즐기고 있는 제1세계,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 제국주의 국가들의 일부 부유층들의 안락과 편의를 위해 세계 농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을 수는 없습니다. 한국 농민들의 자존을 지키는 것은 그럼으로 세계 농민들을 지키는 일이며, 자연의 올곧은 이치를 지키는 일입니다. 세계 노동자들을 지키는 일이며, 제국주의 침략 야욕을 물리치는 일입니다.
연대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분절된 자기 역할만을 평생토록 수행하며 정 없이 살다 가는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한 농부가 땀과 눈물을 바쳐 기른 배추를, 오이를, 상추를, 과실을 먹으며 우리는 하루 하루 살아갑니다. 우리를 구체적으로 살게 해 준 사람들은 시대에 역행해 사리사욕 부정부패나 저지르는 정치인들도, 혼자서 가지기에는 너무 많은 부를 거머쥔 부자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특별한 연대를 위해 가지 않습니다. 떨어져 있지 않았던 관계를 재확인하기 위해 갑니다. 우리를 떨어뜨리려는 정부와 정치꾼들의 나쁜 의도가 보이기에 우리를 지키기 위해 갑니다.
살아 있는 나무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뿌리와 함께 있습니다. 뿌리 없이 줄기만 살아 남는다는 것은 생명의 역사 속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농민들의 삶을 파탄내겠다는 것은 우리를 죽은 나무로 만들겠다는 터무니없는 수작입니다. 우리는 모두 뿌리와 줄기로 연결된 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살아 있는 나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갑니다.
농업은 생산성의 논리로 폐기해야 할 '산업'이 아닙니다. 농업은 자연스런 사람들의 삶입니다. 공기가 없어서는 안되듯 그렇게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토대입니다. 생산성의 논리로 따지더라도 한국 사회 근대화는 농민들의 헌신적인 희생을 통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 근대화를 먹여 살렸던 큰 힘이 농업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한국 농업의 사망선고가 아니라, 한국 농업의 회생입니다. 오히려 필사적으로 지켜나가야 할 가장 큰 민족의 산업입니다. 왜 시장개방의 핵심이 식량시장 개방이겠습니까? 한국 농업은 어떤 공산품 시장이 흔들리더라도 반석처럼 지켜져야 할 마지막 민족의 산업입니다.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아무런 대책없이 아예 농업을 포기하겠다는 정부는 철퇴를 맞기 전에 반성해야 합니다.
문학예술인들은 별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를 배우고자 하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자유가 무엇인지를, 평등이 무엇인지를, 평화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의 뿌리인 농민들의 어려운 식량주권 사수 싸움을 보며 무척이나 우리 문학예술인들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땅에서 뽑히지 않으려 거리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늙으신 농부들을 보며 무척이나 가슴 아팠습니다. 도회지로 도회지로 자식들이며 무엇이며 모든 것을 다 내준 결과가 어린 전경들의 곤봉과 방패였고, 물대포였습니다. 사람의 법을 무시하는 자본주의 반공 법전 속의 창백하고 온기없고 정머리없는 법뿐이었습니다.
법은 가진 자들만이 만드는 무소불위의 것이 아닙니다. 법은 문학예술인들도 만들고, 농민들도 만듭니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파병이나 하는 법, 56년 분단독재의 검은 유령이었던 국가보안법이나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법, 한줌도 안 되는 자본가들의 이득을 지켜주기 위해 수많은 비정규직들을 만들려는 법, 이 모든 악법들에 맞서 우리는 다른 법을 세우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오늘 출발은 그 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부디 정부와 정치인들이 농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귀담아 듣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2004년 12월 7일 식량주권 사수를 위한 문학예술인 창작농활단 일동 / 식량주권 사수를 위한 문학예술인 창작농활단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