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농업정착기술시범단지 팻말박도
그의 집은 횡성군 갑천면 포동마을로, 횡성 댐에서 그리 멀지 않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조상 대대로 살던 집을 지난 봄에 새로 지었다는데 아직도 페인트 냄새가 날 정도로 산뜻했다.
그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갑천초등학교와 갑천중학교를 마치고 원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9년,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고 있다.
그는 올해 일흔인 어머니 김옥례씨의 6형제 중에 막내둥이로서, 같은 대학 커플인 아내 신용한(34)씨 그리고 아들 희망(5), 딸 해언(4)이를 둔 가장이다. 아버님까지 모셨지만 2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필자가 탐방한다고 일부러 자리를 피해 마실 가신 할머니를 뵙고자 윤종상씨와 이웃 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 댁으로 찾아갔다. 요즘 가을걷이가 끝났기에 시골집 안방에는 같은 또래의 할머니들이 모여 점심도 해 잡수시고, 때로는 화투장도 만지면서 소일한다고 했다.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던 막내아들이 고향으로 내려온다고 하기에 고맙기도 했지만, 고생할 게 뻔한 것 같아서 몹시 가슴 아팠어요. 농사도 남다른 농사(친환경 유기농)를 지으면서 풀더미 속에 사는 걸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남 보기 남세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당신은 남달리 며느리 밥 얻어먹고, 손자 손녀 재롱 보는 재미를 누리기에 흐뭇한 표정이었다. 마침 윤종상씨가 농사짓는 들판에는 추수가 끝나 텅 비어 있었지만, '친환경농업정착기술시범' 단지임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는 들길에서 모자는 다정히 포즈를 취해 줬다.
그에게 올 농가 수입을 물었다. 그는 그냥 웃기만 하면서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내가 쓰는 글은 전국의 독자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진 동포, 그리고 각계각층에서 보기에 정확하게 얘기해 줘야 보는 분들이 우리 농촌을 바로 알 것이라고 거듭 채근하자 그제야 무겁던 입을 열었다.
"올 농사는 논 4500평에 밭농사 600평을 지었다. 논농사 추수를 하고보니 1200만 원의 수입을 올렸는데, 도지와 영농비로 절반 정도 썼기에 순수입은 60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매월 50만 원의 수입이다. 밭농사는 집안 식구들 먹을거리와 어머니 용돈 정도였다.
월 50만 원의 수입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횡성여성농업인센터의 공부방 아이들 통학차 기사 수입으로 메우고 있다. 젊은이들이 시골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두레와 품앗이와 같은 협동조직체를 되살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