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집 <사랑> 표지정병진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시대 '보헤미안'인 임의진이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놨다. 아마 그를 띄엄띄엄 아는 이들은 "목사, 수필작가, 포크가수, 화가도 모자라 이제 시(詩)에까지 손댔어?"라며 생뚱맞게 생각할지 모른다. 정말 모르시는 소리다. 시집을 처음으로 묶어 내놓았을 뿐이지 그는 매주일 만드는 교회 주보에다 시를 한 수씩 써서 싣던 그런 사람이다. 어쩌면 그를 유명하게 만든 수필보다도 먼저 시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깐 이건 결코 외도로 보아 넘길 만한 예삿일은 아니다.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은, 예전에 접했던 그의 짧은 시들보다 호흡이 사뭇 길어졌다. 그만큼 수련을 한 것일까? 시처럼 수필을 쓰더니만 수필이 시로 제 자리를 잡는 건가? 잘 모르겠다. 시를 무척 좋아하는 아내의 말을 빌면, 시집 한 권에서 괜찮은 시 하나만 건져도 그 시집은 성공한 거란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는 읽는 이의 가슴을 후비는 시가 적어도 너댓 개는 되지 싶다.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서 더욱 그렇다. 무릇 시는 온몸으로 쓰는 거지 얄팍한 글재주로 남 눈속임이나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진짜 시인되기가 참 어려운 법이다.
시인이 십여 년 전에 쓴 시 하나를 읽어보자.
우리 어릴 적 작두질로 물길어 먹을 때
마중물 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 대면 그 물이
땅 속 깊이 마중 나가 큰물을 데불고 나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마중물이 된 사람'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시는 '마중물'이라는 말을 유행시켰을 정도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시인은 마중물이 되어보겠다는 각오로 귀농하여 궁벽한 강진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더불어 지난 십년을 살았다. 당시만 해도 그를 아는 사람이라곤 거의 없었다. 그가 아버지를 이어 맡은 교회도 교역자 생활비 한 푼 챙겨주지 못할 정도 지지리도 가난했다. 사막을 옥토로 만든다더니 시인이 그랬다. 이곳에서 그는 슬프고 애잔한 사람들의 손발이 되어주었고 그들이 쏟아낸 숱한 사연들을 수필과 시로 대신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