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걷힌 아침 하늘이 곱다최윤미
아침 7시, 부지런히 걸어 도착한 주산지는 온통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물도, 나무도, 산도, 짙은 안개에 가려 있어서 거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풍경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기 힘들 만큼 신비로웠다.
호숫가로 내려가 150여 년 묵은 왕버들이 흐릿하게 보이는 자리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눈에 익어, 옅어지다 다시 짙어지고 조금씩 물이 흐르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영영 안걷히면 어쩌나 싶을 만큼 짙은 안개가 서서히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옅어지더니 갑자기 걷혔다. 그리고는 수면을 떠나 산을 거슬러 하늘까지 서서히 올라갔다.
물안개가 걷히고 제 모습을 드러낸 주산지는 이제 막 가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고요한 수면은 돌멩이 하나의 파장도 생생히 드러낼 만큼 투명했고, 아침 햇살을 받은 고운 가을산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기이하게 생긴 왕버들은 수면에 그대로 반사되어 멋진 데칼코마니 작품(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스케치북을 반으로 접어 편 다음 한쪽에 물감을 칠하고 다시 접어서 똑같은 모양을 찍어내곤 했다)을 보는 듯했다. 작고 아담해서 더 아름다웠던 주산지에서 오래 머물다 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새벽에 지나올 때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한낮이 되자 생생히 눈에 들어왔다. 군내버스가 다니는 이전리까지 가는 5~6km 정도의 도로변에는 추수를 끝낸 들판과 사과 과수원이 끝없이 이어졌다. 길 양쪽으로 붉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곳을 지날 때는 달콤한 사과 향기가 진동했다.
언제쯤 다시 그 곳에 갈 수 있을까. 사과꽃 필 무렵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연둣빛 잎들이 막 돋아나는 봄에도, 눈내린 한겨울에도 주산지는 참 멋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