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인도-베트남 순방에 이용한 아시아나항공 특별기. 이번 순방을 계기로 항공사 사장의 대통령 특별기 동승관행이 깨졌다.오마이뉴스 김당
노 대통령은 이번 해외순방에서 특유의 결벽주의로 몇가지 관행을 깨뜨렸다. 그 첫번째는 사업을 실제로 주관하는 기업의 성과를 정부가 '따먹는' 관행을 깬 것이다.
이제까지는 해외에 진출한 기업의 노력으로 일군 대형 프로젝트나 계약이 있더라도 대개는 대통령의 순방에 맞춰 '사인'을 하는 게 관례였다. 또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앞두고 청와대에서는 정부의 관련 부처와 기업들에게 진행되는 사업을 한데 모으고 채근하곤 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 성과를 빛내기 위해서다.
사실 기업이 그런 성과를 거둔 데는 정부의 외교적 지원과 뒷받침이 있었으므로 기업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다고 해서 꼭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결벽주의에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런 관행마저 마뜩치 않았다.
카자흐스탄·러시아 순방 때부터 노 대통령을 수행한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은 "노 대통령이 기업인들이 이뤄놓은 과실을 따먹는 사인을 안하겠다고 해서 노 대통령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순방에서 깨진 두번째 관행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계속되어온 대통령 해외순방 때에 국적기(대통령 특별기) 사장이 동승하는 것이다. 특히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항공사 사장의 동승은 대통령에 대한 예우이자 항공기의 안전을 사장이 책임지겠다는 제스처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과 독대할 모처럼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대를 싫어하는 결벽주의자인 노 대통령에게는 항공사 사장의 동승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천호선 의전비서관은 "의전 개혁 차원에서 그런 동승 관행을 없앴다"면서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경련에서 제출한 대통령 해외순방 경제사절단의 기업인 명단을 보니 전부 기업의 필요에 따라서 온 사람들인데 필요에 따라서 오지 않은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었다. 명단을 보니 지난번 카자흐스탄·러시아 순방 때도 동행했었다. 알고 보니 항공사 사장이 동행하는 것이 관행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오실 필요 없다고 했는데 미리 잡아놓은 일정 때문인지 인도까지만 별도의 항공편으로 오시고 특별기에는 상무가 동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항공사 사장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베트남에서 5박6일 동안 할 일이 뭐 있겠나."
경제5단체와 대기업 위주로 짜여진 경제사절단의 공식·비공식 의전 관행도 이번에 깨졌다. 청와대는 늘 '그 밥에 그 나물'인 의전 식단을 현지 진출기업 중심으로 대기업·중소기업간의 균형을 잡는 쪽으로 개선했다. 다음은 천호선 비서관의 얘기다.
"국빈만찬 등은 공간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국내에서 하듯이 의전을 짜다보면 국내에서 맨날 보던 사람들이 해외에서도 맨날 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또한 의전개혁 차원에서 강신호 전경련 회장 등에게서 '좋다'는 동의를 구해 현지 진출기업 우선으로 좌석을 배치하고 중소기업의 참여를 높였다."
의전식단도 현지 진출기업 중심으로 재배치
그런 점에서 카자흐스탄·러시아·인도·ASEM·베트남으로 이어진 순방성과는 성공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 성공의 이면에는 노 대통령 특유의 고집과 결벽이 묻어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인도에서건 베트남에서건 더 많은 한국 상품을 팔기보다는 더 많은 인도·베트남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 진솔함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노 대통령은 인도에서는 즉석 연설로 우리 기업이 인도의 파트너로서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역설했다.
"한국 기업은 시작하면, 뿌리내리면 쉽게 포기하거나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신뢰를 받고 있다. 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또 최근에 중국이 사스로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 한국기업은 떠나지 않았다. 어렵더라도 한번 만든 인연을 성공시키려는 의리와 고집이 있다. 그 점에서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