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22회

등록 2004.09.19 07:41수정 2004.09.1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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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담천의의 전신을 쭉 훑어 보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몸은 괜찮나?”
“보다시피 견딜 만은 하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담천의는 양손을 들어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거구의 사내는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구....검을 쓸 수 있느냐는 ....”

그 말에 옆에서 지켜보던 학창의의 사내가 고함을 질렀다.

“대형...! 보면 모르오. 가슴에 터져 나오는 피도 안보이오? 도대체 형님은 지금..”
그 말에 거구의 사내는 지금과 다르게 찔끔한 표정을 보였다.

“알았어...알았다구...”
“어떻게 생각하는게 맨날 싸우는 것 뿐이오? 그저 검만 든 사람을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싸우자고 하니... 내 참...”
“알았다니까...”

거구의 사내는 손사래를 치며 그의 말을 막고는 불쑥 담천의에게 말했다.


“마음에 든다. 나는 구양휘(九陽輝)라 한다.”

저런 식의 말투는 친근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담천의는 그 말에 온몸이 경직되는 듯 했다.


구양휘....장검(長劍).....!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구양휘라니.....!

무림에 대해 별로 아는 바 없는 담천의도 구양휘에 대해서는 들었다. 검을 잡은 자라면 모두 구양휘를 알았다. 아니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구양휘를 안다.

무림세가인 구양가(九陽家)의 장손(長孫).
강호에 알려진 무림세가는 많다. 그리고 가문의 세(勢)라는 것도 배출해 내는 인물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인물로 인하여 강호의 무림세가 서열이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구양휘는 그 하나로 무림세가의 서열을 바꾸어 놓은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를 무적철검(無敵鐵劍)이라 부른다. 그리고 검에 있어서는 그와 비교하기를 거부한다. 십팔세에 무림에 나온 이후 그는 그의 외호대로 무적이었다.

한때 검귀(劍鬼)라 불리기도 했고, 무광(武狂)이라 불리기도 했다. 검에 미쳤고, 승부에 미쳐 아무나 붙잡고 비무해왔기 때문이었다. 특이하게 보통의 검보다 두배는 긴 장검을 사용하는 검의 달인(達人).

담천의는 다시 한번 엉거주춤 포권을 취하며 예를 표했다.
“담천의라 하오.”
“자네 몸을 추스린 다음 생각하지.”

또 그의 발작과도 같은 승부욕 때문 일게다. 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담천의는 고개를 저었다.

“본인은 구양선배를 따라가지 못하오.”
솔직한 심정이었다. 조금 전 보여준 한수만 하더라도 그는 구양휘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선배....? 하기야 내가 자네보다 먼저 태어난 것 같고, 먼저 무림에 나왔으니 선배는 선배겠지만 무슨 얼어죽을 선배야...”

구양휘는 담천의의 어깨를 툭 쳤다. 마음에 들거나 친한 사람에게 하는 구양휘의 버릇이다.
“억..”
하지만 담천의의 입에서는 나직한 신음이 터졌다. 자기 딴에는 툭 쳤다고는 하나 맞는 담천의가 느끼는 충격은 적지 아니하다. 그 모습을 보며 구양휘는 히쭉 웃었다.

“이제부터는 형이 아니라면 이름을 불러.”

구양휘의 말을 들은 학창의의 사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인간이 미쳤나? 저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정말 마음에 들었나?)

구양휘는 아무나 자기를 형이라 부르게 하지 않는다. 많은 무림세가의 후기지수들이 그와 친분을 맺으려 했고 자신과 같이 구양휘의 눈에 들어 호형호제하는 인물들도 있었지만 구양휘는 아무에게나 형이라 부르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이라 부르는 자들에게 “내가 왜 네 형이냐?”는 말로 핀잔주기 일쑤였던 것이다.

학창의의 사내는 의외라고 생각하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소제는 팽악(彭岳)이라 하오. 대형처럼 유명하지는 않아도..”

그가 말을 잇기도 전에 구양휘가 말을 끊었다.

“아....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돼. 지 집 안방에서 하북오귀(河北五鬼)인지 쥐새끼인지 이름없는 놈들을 때려잡아 소문만 무성한 놈이니까.”
“형님....그래도..”

팽악이 볼멘 소리를 내자 구양휘는 그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말이 다독거리는 것이지 정작 팽악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팟다.

“그래...그래...뭐 너도 힘깨나 쓴다는 거산독두(巨山禿頭) 철응(鐵鷹)을 개패듯 팬 적이 있으니 알아줄만은 하지.”

구양휘의 비하처럼 팽악이 그리 소문만 무성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북팽가(河北彭家)의 인물로 가전도법(家傳刀法)인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를 극성까지 익히고 기이한 권법(拳法)을 사용한다하여 용권신도(龍卷神刀)라 불리워지는 인물이다.

또한 그가 처리한 하북오귀나 거산독두는 하류배가 아니였다. 무림에 첫 출도한 그는 그의 가문이 있는 하북성에서 기이독랄한 무공을 사용하며 상대가 없다던 하북오귀를 첫 상대로 삼아 끈질긴 추적 끝에 모두 살해했다. 하북에도 전대기인(前代奇人)이나 고수들이 있었으나 하북오귀를 상대하려다 망신당한 일을 보면 그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거산독두 철응은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인물로 몽고인처럼 머리를 모두 밀고 뒷꼬리 머리만 남긴 천력의 소유자였다. 사파의 인물은 아니지만 성질이 불 같아서 시비가 많았는데 그의 타고난 신력 때문에 모두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몸집의 두배나 되는 천력의 철응을 팽악은 도를 사용하지 않고 주먹으로 굴복시켰다.

담천의는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하오. 담천의요.”
“만나서 반갑소. 신흥고수가 나타나 영 기분은 좋지 않지만...”

말과는 달리 그는 쾌활하게 웃었다.
“하하...농담이오. 헌데 이거 우리만 떠들어서....송소저를 너무 기다리게 한 것 같소.”
“도와주신데 감사드려요.”
그제서야 그녀는 팽악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커다란 위기에서 담천의가 다치지 않고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녀가 아는 한 구양휘가 있다면 그들은 안전할 터였다.

“험...험...헌데 담형은 표사가 정말 맞소? 아니면 예전부터 송소저와 아는 사이로 송소저를 보호하려고 표사대열에 끼어 든거요?”

아마 그들의 대화내용을 듣지는 못했어도 그들의 눈빛과 행동은 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손을 잡고 내려오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물은 것 일게다. 송하령의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담천의가 싱긋 웃었다.
“팽형이 보기에는 어떤 쪽일 것 같소?”

그 말에 송하령의 얼굴은 더욱 붉게 달아 올랐다. 구양휘는 무슨 말인가 꺼내려 하던 팽악의 등을 가볍게 쳤다.

“됐다. 이놈아...갈대인(葛大人)께서 기다리시겠다. 자 가자.”
“억...!”
팽악은 앞으로 꼬꾸라질 것 같은 신형을 바로 세웠다. 구양휘의 장난은 장난이 아니다. 더구나 솥뚜껑만한 손은 검을 잡지 않아도 가히 살상 병기다.

“으이구....나니까 맞고 살지....”
팽악은 앞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6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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